살처분 트라우마와 과로, 안전 문제 등 개선요구 높아져

AI 업무 투입 공무원의 노동권, 건강권, 인권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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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AI 발생 때마다 방역활동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AI 관련 업무에 동원돼 밤낮 없이 과로를 하고 살처분 현장에 강제투입된 후 외상후 스트레스(PTSD)에 시달리는 등 고통을 받고 있어 이 문제를 공무원의 노동권과 건강권,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AI 청정 지역’이었던 제주시 한 농가에서 AI가 발생한 후 제주도에서는 AI 발생 농장과 의심 농가 방역과 살처분 현장에 공무원들을 대거 동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 강문상 본부장은 “도내 공직자 1천여 명이 직간접으로 투입됐다”며 “그 이전까지는 전 직원이 조를 편성해 거점 중심으로 방역처리를 도왔으나 이번에는 ‘청정 지역 사수’라는 명분으로 살처분 현장까지 공무원을 대거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강 본부장은 “동원된 공무원들은 가금류 농장에 들어가 닭을 뜰채를 이용해 잡고 죽은 닭을 포대에 담아 불에 태우거나 매장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제주 지역 AI 살처분 현장에는 제주지역 여성 공무원들도 투입됐다. 살처분 현장에 참여한 서귀포시 서부보건소 윤점미(6급, 여)씨는 “잡히지 않고 달아나려는 닭을 잡아 수의사에게 넘기면서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며 “지금도 죽을 때 날개를 퍼덕이는 생명체가 머릿속에 아른거리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음을 호소했다.

또 제주시 기초생활보장과에 근무하는 오수현(6급 여)씨도 “살아있는 생물체를 죽였다는 트라우마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한 것 같다”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공직자들이 대거 동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 제주지역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위해 농가에 투입돼 작업하는 모습. 사진 = 공무원노조 제주본부
▲ 제주지역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위해 농가에 투입돼 작업하는 모습. 사진 = 공무원노조 제주본부

공무원노조 서귀포시지부 김봉호 지부장은 이번 살처분 현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조합원들이 대거 살처분 현장에 내몰리고 있어 지부장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참여하게 됐다”며 “현장에서 살처분을 직접 해보니 그 아픔과 고통이 생각보다 꽤 오래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은 이처럼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자꾸 생각나고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동물들의 비명 소리가 환청으로 남아 업무에도 지장을 받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 투입되기 전 공무원들은 인플루엔자 예방 주사를 맞고 타미플루를 복용하지만 ‘감염’에 대한 두려움도 떨칠 수 없다. “가족들이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집에 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한 살처분 참여 공무원의 말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방역현장의 최일선에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마저 담보해야 하는 고충을 짐작하게 한다. 국민안전처와 각 도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치유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나 불충분하며 이는 사후처방일 뿐 근본적 안전대책은 아니다.

살처분으로 인한 트라우마뿐 아니라 과중한 업무 부담도 문제다. 지난 해 12월 AI 관련 업무를 맡았던 경북 성주군의 40대 공무원이 사망해 과로사로 추정되고 있으며 24일엔 포천시의 50대 공무원이 사망했다.

공무원노조가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AI 업무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과도한 근무시간과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제주와 경북, 경남, 충북 등 AI 발생 주요 지역에서 공무원들은 방역기간 장기화로 인한 장시간 근무, 잦은 비상근무 등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다. 강 본부장은 “재난업무에 동원된 공무원들은 밀린 본업무를 위해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해야 하고 이는 다수 민원인에게 피해가 돌아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업무강도나 중요성에 비해 돌아가는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앞서 공무원노조의 조사 결과 AI관련 업무에 투입된 공무원들은 대체로 대체휴무를 받거나 시간외 수당을 지급받을 뿐 위험 업무에 따른 보상은 지급받지 못했다.

공무원노조는 “방역근무시간 이후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방역초소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방역현장에 공무원 동원을 최소화하도록 특히 살처분의 경우 전문 인력 배치로 공무원 동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노조 양산구지부 김권준 사무국장은 “AI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도 근본적 대책 마련 없이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가 따로 예산을 마련해 AI가 발생할 경우 바로 전문가가 투입될 수 있도록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공무원노조가 소속된 ‘가축살처분방지및제도개선을 위한공동대책위’는 “법률이나 지침에도 강제의무규정이 없는데 공무원과 군인이라는 신분만으로 강제동원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는 국민의 기본적 건강권과 인권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 “살처분에 대한 전담기구 및 전문인력 육성과 살처분 인력에 대한 인권보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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