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감염 우려로 불안감, 불면증·식욕저하 등 유발

'AI 살처분' 공무원들 트라우마로 고통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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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 닭 살처분에 나섰던 공무원들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도 살처분 작업 이후 괜히 짜증이 나고 불면증과 의욕저하, 식욕감퇴에 시달리고 있다. 트라우마 증세를 보이고 있는 이들은 지난해 휴일도 반납한 채 자발적으로 충북 음성군 생극면의 한 산란계 농가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첫날 1만7000여 마리의 닭을 안락사 시켰고, 다음날은 죽은 닭들을 살처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첫날 이들은 닭을 한곳에 몰아 비닐을 씌워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안락사 시켰다. 다음날 안락사 시킨 닭을 살처분 하기 위해 농장 안으로 들어서자 환기기 되지 않은 실내에서 살이 썩는 냄새와 함께 암모니아가스가 코를 찔렀다.

이들이 비닐을 벗기는 순간,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닭들이 ‘꼬꼬댁’하며 비명을 질렀고 그 광경은 공포감마저 엄습하게 했다. 공무원들은 살아남은 닭 10여 마리를 어쩔 수 없이 목을 비틀거나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 지난해 말 충북 음성군 생극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위해 안락사 시킨 닭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 지난해 말 충북 음성군 생극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위해 안락사 시킨 닭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첫날 이산화탄소 주입을 위해 비닐을 씌울 때 닭들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저항했다. 이때 찢긴 비닐 주변에 공기가 들어가면서 주변의 닭들이 용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닭들도 살처분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땅에 묻혔다.

살처분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이들은 농민들의 피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마음의 짐까지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번 AI가 인체감염의 우려가 있는 고병원성으로 가족과 직장 동료들에게 전염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처분 사후처리도 공무원들의 몫이다. 담당부서 공무원들은 휴일도 없이 2~3명이 팀을 이뤄 가축 살처분은 물론 사후처리에 매달린다. 또 두 달 가까이 하루 3교대로 방역초소와 상황실 근무가 이어지면서 공무원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극에 달하고 있고 피로감도 가중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27일 경북 성주군에서는 AI업무를 보던 군청 공무원 정모(40)씨가 자택에서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공무원은 AI가 발생한 이후 매일 12시간 이상 방역 업무를 맡아 오전 7시 40분에 출근해 오후 9∼10시까지 근무했다. 사망 하루 전인 26일에는 성주군 대가면 농산물유통센터에서 오후 10시까지 AI 거점소독 업무를 했다.

이번 살처분에 참여했던 정 아무개(54) 공무원은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전염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컸지만 농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실이 안타까워 자발적으로 나섰다"며 "살처분 이후 금연에도 실패하고 불면증으로 인한 피로와 식사량까지 줄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17일 발생한 AI로 인해 전국에서 30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가축 살처분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서 정부와 국회는 휴업 보상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해 16일 충북 진천군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시종 충북도지사의 건의에 따라  "AI 예방을 위해 충북에 시범적으로 휴업보상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휴업보상제는 AI가 발생하는 겨울철 3개월 동안 농민들이 가금류 가축을 입식하지 않을 경우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고 1월 중으로 도입 여부가 결정 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이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류독감 살처분 공동대책위원회는 AI 근본 예방대책으로 '공장식 밀집사육' 환경의 개선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일반 양계농가의 닭 한 마리당 사육면적은 A4용지 면적(0.06㎡)보다 작은 0.04~0.05㎡에 불과하다.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 오일 간사는 "현재의 공장식 밀집 사육방식은 세균과 바이러스로 오염되고 유전적 다양성도 부족하다"며 "또 이 방식은 닭과 오리의 건강과 면역체계를 악화시켜 고병원성 AI가 쉽게 발생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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