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절대 권력을 해체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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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들과 논쟁을 할 때 거대한 벽에 막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주로 두 가지 주제에 대한 논쟁 때 벌어지는 일인데, 하나는 사형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의원 숫자를 어떻게 정해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다.

사형제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단호한 반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아무리 내가 간곡히 주장해도 주변사람들에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저런 쓰레기 같은 범죄자를 왜 살려둬야 하느냐?”는 분노나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한 심정을 생각하지도 않냐?”는 공감은 모두 매우 지당한 지적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러니 아무리 내가 논리로 상대를 이길 방법이 없다.

사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 칼럼의 주제가 아니니 간단히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내가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것이 한 사회의 철학적 바탕을 규정하는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사회는 후자를 전제로 한다.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자는 죽여도 괜찮다”는 철학이 바탕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철학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확산시킨다.

반면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에서는 살인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가 되레 줄어든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이게 내가 사형제에 반대하는 본질적 이유다.

독과점의 폐해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하나 줄여야 하나에 관한 문제다. 내가 별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제학계의 대세를 이루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견해 중에 내가 꽤 그럴싸하다고 동의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독과점과 카르텔에 대한 시각이 그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저서 국부론에서 자유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가장 큰 적으로 독점을 꼽았다. 특정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면 정상적인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독점 기업에 대한 적대감은 자본주의 국가의 선봉에 선 미국에서 꽤 거친 방법으로 발현됐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미국은 그야말로 독점기업의 시대였다. 이 무렵을 지칭하는 또 다른 용어가 ‘강도 귀족(robber baron)의 시대’다. 독점으로 어마어한 돈을 쓸어 담은 자본가들의 악랄함을 지칭하는 용어다.

사태가 어느 정도였냐면 역사상 한 번도 왕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라인 미국에서 이 무렵에는 각종 왕(?)들이 난립했다.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를 필두로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등이 모두 이 시대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매우 과격한 방법으로 이 독점을 박살을 냈다. 그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상원의원 존 셔먼(John Sherman, 1823~1900)이었다. 셔먼은 기업들 간의 가격 담합 금지와 독점기업 허용 금지 등 두 개의 핵심 조항을 담은 독점 금지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반(反)독점법, 이른바 ‘셔먼 법’이다. 셔먼 법에 의해 미국에서는 모든 형태의 독점이 금지됐다. 록펠러가 이끌던 스탠더드 오일은 무려 30개 회사로 산산조각이 났고, 담배 시장을 95% 이상 휩쓸었던 아메리칸 토바고도 16개로 쪼개졌다. 당시 셔먼은 이 법안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을 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도 독점을 원치 않는다.”

국회의원을 늘려야 하나 줄여야 하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원 숫자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게 마치 정치개혁을 위한 일인인 양 포장하며 말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웃기는 소리다. 아니, 웃기는 소리를 떠나 미친 짓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독점의 폐해는 단지 기업 한 개가 시장을 지배할 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두, 세 개가 연합해 시장을 장악하거나, 아니면 몇 개의 기업이 담합을 해 시장을 좀먹는 경우도 모두 해당된다. 이것을 과점, 혹은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왜 미워하나?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국회의원으로서 누릴 권리만 잔뜩 누리고 민중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본연의 임부를 버렸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건 우리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대변하지 않고도 권력을 누린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딱 하나다. 국회의원의 권력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민중들을 위한 법안은 하나도 발의하지 않으면서 선거가 있는 해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지역구 예산 몇 개 따내면 그 사람은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정치 신인들이 기존 국회의원의 벽을 넘는 일은 실로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권력 카르텔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이야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셔먼이 묘안으로 내세운 것은, 두, 세 개 거대기업에 집중된 시장 권력을 수십, 수백 개의 기업에 쪼개서 분배한 것이다. 플레이어 숫자가 많아질수록 당연히 각각 플레이어가 누리는 권력은 약해진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숫자가 900명쯤 된다고 생각해보라. 이 9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숫자 평균을 사용했을 때 나오는 우리나라의 적정 국회의원 숫자다.

만약 이 정도 숫자의 국회의원이 있다면 절대 이들은 지금처럼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없다. 반면 한동훈 비대위원장 말마따나 국회의원 숫자를 250명으로 줄이면 그 250명의 권력은 더욱 비대해진다. 정치는 더더욱 민중과 멀어질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원한다면 우리는 보다 겸손하고, 보다 열정적이며, 보다 민중과 가까운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회의원 300명의 권력이 공고한 현실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을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지금 국회의원들을 미워하는 것?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 이건 정말 잘못된 대안이다.

숫자를 더 늘리자. 그리고 그들의 독점적 특권을 줄여야 한다. 진정으로 정치를 개혁하고 싶다면 그 첫 출발은 국회의원 정족수를 늘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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