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875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통령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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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하나로 마트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농협 하나로 마트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칼럼 제목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통령의 눈깔’이라고 쓰려다 참았다. 품격과 예의를 중시하는 공무원 노동조합원들에게 결례가 될 것 같아서였다. 사실 그보다 먼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통령의 개눈깔’이라고 쓰려다가 이것도 참았다. 개에게 모욕적인 말이 될까봐서였다. 사실 아주 맨 처음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통령의 동태눈깔’이라고 쓰려다 이것도 참았다. 동태는 맛있기라도 하지.

3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한국농수산물유통센터에 따르면 당일 대파 평균 가격은 3,000원을 넘겼다. 대통령이 방문한다니 하나로마트가 허겁지겁 가격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뭘 보고 온 건가?

대파 가격 잘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대파 한 단 가격표에 875원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당연히 “아니, 요즘 물가가 올라서 매일 걱정하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싸?”라는 의심을 보여야 한다. 대파가 한 뿌리도 아니고 한 단이면 몸집 작은 성인의 상반신을 반은 가릴 정도로 푸짐하다. 그게 875원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상식적이다. 그리고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라면 “이러면 농민들은 먹고 살 수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런 생각의 콤비네이션이 불가능하다. 그냥 눈에 보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막 던진다. 시야가 좁아도 이렇게 좁아터질 수가 없다.

소비자물가지수라는 것이 있다. 민중들이 일상생활에서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기 위해 작성되는 지수다. 구입 비중이 큰 458개 상품 및 서비스 품목의 가격 변동폭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산출한다.

그런데 이 458개 항목에는 가중치가 있다. 더 중요한 품목일수록 가중치가 올라간다. 가중치가 1 이하로 잡히는 항목들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다. 반면 전세(54.2), 월세(44.9), 휴대전화요금(29.8), 휘발유(24.1) 공동주택관리비(21.8) 등 20이 넘는 품목들은 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참고로 중고등학교 학원비의 가중치는 각각 13.8로 이 역시 상당히 높다.

마트에서 주로 구입하는 식료품 분야에는 총 140개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 중 파의 가중치는 0.9로 1에 못 미친다. 마트에 가서 물가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가중치가 높은 품목을 집중적으로 봐야 한다. 돼지고기(9.8), 국산쇠고기(8.6), 빵(6.8), 쌀(4.2), 우유(3.4), 수입쇠고기(3.1), 밑반찬(3.1), 즉석식품(3.1), 달걀(3.0) 등 가중치가 3이 넘는 품목들이다. 대파가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훨씬 민중들의 체감물가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이런 것들부터 좀 골고루 돌아보고 올 것이지 왜 하필이면 기껏 하나 손에 집었는데 그게 875원짜리 대파냐? 처음 칼럼 제목을 지을 때 동태눈깔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이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윤 대통령이 마트에 가서 보고싶은 것만 보고 왔기 때문이다. 진짜 서민들의 물가 체험을 하려면 골고루 이것저것 다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의 눈(깔)은 이런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다.

물가가 문제란다. 대통령은 이결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마트에 몸소 납시었다. 어, 그런데 대파가 한 단에 875원이다. 앗싸, 물가가 생각보다 싸네! 뭐 이런 단순한 시야와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보고싶은 것만 본다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주의력 착각, 혹은 무주의맹시(inattention blindness, 無注意盲視)라고 부른다. 사람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려고 하지 않는 것(무주의)은 보이지 않는다(맹시)는 뜻이다.

1999년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던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와 그 학교 조교수였던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는 심리학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실험을 실시했다. 이른바 ‘투명 고릴라 실험’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흰 티셔츠를 입은 3명과, 검은 티셔츠를 입은 3명을 동시에 투입했다. 같은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한 팀이 돼 좁은 공간에서 농구공을 자기 팀원들에게 쉴 새 없이 패스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1분짜리 동영상에 담았다.

그런데 23초 후 갑자기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동영상에 난입을 한다. 고릴라는 태연히 공간 한가운데로 들어온 뒤 가슴을 쿵쾅쿵쾅 치고 슬며시 빠져나간다. 이 시간이 무려 9초다. 고릴라가 좁은 공간에 난입해 무대 중앙을 점거했기 때문에 보통 상황이라면 절대로 이 고릴라를 못 볼 수가 없다.

실험팀은 동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검은 티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는 무시하고, 흰 티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 주세요”라고 요구한다. 북적거리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패스이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세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연구팀에 따르면 흰 티셔츠 팀의 총 패스 횟수는 34회라고 한다.

하지만 패스 횟수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험팀이 진짜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실험팀은 참가자들에게 “선수 말고 혹시 눈에 띄는 누군가는 없던가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없었다”고 답을 했다.

그래서 “혹시 고릴라를 못 보셨나요?”라고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못봤다”고 답을 했다. 고릴라가 난입해 무려 9초 동안 가슴을 쿵쾅거렸는데 그걸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연구팀이 이 실험을 반복한 결과 참가자의 무려 절반이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이 보고싶은 것에 집중하는 순간, 다른 진실은 보지 못한다. 이게 바로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의 심리다.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은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할 시야는 지도자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이 나라 지도자의 눈(깔)은 대파 한 단 875원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민생탐방을 백날 다니면 뭐하냐? 눈(깔)이 제대로 보는 게 없는데. 더 무서운 사실은 저런 눈(깔)을 가진 대통령의 통치 기간이 아직도 3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이다. 이건 진짜 호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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