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일자리가 질좋은 일자리 잠식할 것”

시간제일자리 ‘공공운수노조’는 어떻게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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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정부 주도형이라는 점에서 네덜란드 보다는 독일의 사례를 드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2003년 독일 정부는 고용서비스 현대화를 추진한다며 시간제 일자리에 소득세 면제혜택을 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미니잡이라 불리는 독일식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노동조합 측은 초기부터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비판했다. 사용자들은 미니잡 제도를 환영했지만, 추가적인 비용 부담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고용주의 사회보장부담금 인상과 15시간 노동시간 상한의 재도입에는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확대 도입된 시간제 일자리는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2010년 9월말 현재 730만 명이 미니잡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 독일 전체 일자리의 1/5이며, 500만 명은 미니잡이 주수입원이다. 미니잡은 전일제 일자리를 붕괴시키고 있다. 저임금 고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전일제 일자리가 미니잡으로 잠식되는 현상(Holger Bonin, the Mannheim-based ZEW think tank)’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시간제 일자리, 빈곤층 양산의 주범

현재 독일은 그 부작용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다. 미니잡은 저임금 노동의 증가를 통한 빈곤층 양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미국과 한국에 이어 저임금 고용의 증가에 따른 불평등한 노동시장을 가진 나라로 평가됐다. 이는 수치로 증명된다. 2011년 현재 150만 명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으로 인해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보충급여를 받고 있다. 전일제 또한 저임금 고용은 이탈리아는 8%, 그리스는 13.5%지만, 독일은 20%에 달한다. 독일은 뒤늦게 최저임금제 도입 및 불안정 고용을 제한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아 보인다. 시간제 일자리는 일단 시행하면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공공운수노조연맹 공성식 정책국장
▲ 공공운수노조연맹 공성식 정책국장

한국에서도 독일과 같은 문제점이 재현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나마 일반기업보다는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갖추었다고 보이는 공공기관에 대해 분석해본다. 공공운수노조연맹은 최근 ‘2014년 공공기관 시간제 채용계획’을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될 시간제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약 149만원 수준이다. 20시간 일자리의 평균임금은 129만원으로 이는 2013년 상반기 기준 5인 이상 사업장 상용직 노동자 평균임금인 325만원의 약 39.7%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국농어촌공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국민연금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한전KDN(주) 등 임금이 100만원에 불과한 기관도 존재한다.

# 경력 여성 아닌 청년들의 반절 일자리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고용 효과는 어떨까.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공개된 2013년 예산안 기준으로 보면 경력단절 여성을 뽑는 경우 대부분 임금은 초임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공공기관 시간제 일자리는 정부의 정책 목표처럼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청년들의 질 낮은 일자리가 될 공산이 큰 것이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국장은 “정부가 말하는 여성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라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에서는 정부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가사와 보육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일자리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 시간비례 임금비율이 100% 미만인 공공기관-공공운수노조연맹 자료
▲ 시간비례 임금비율이 100% 미만인 공공기관-공공운수노조연맹 자료

독일과 같이 전일제 일자리를 시간제 일자리가 잠식하는 부작용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기획재정부는 2014년 공공기관 신규 채용 인원의 5%를 시간제 일자리로 채용하고 매년 2~3% 비율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는 공공기관의 일자리 중 상당수가 전일제 일자리에서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자발성이 없는 강제적인 시간제 일자리의 도입은 기존 전일제 일자리의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자를 개별화 시킬 가능성도 보인다.

공성식 정책국장은 “현재 있는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개선도 도외시 한 상태에서 정부가 ‘양질의 시간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결국 현재의 전일제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겠다는 정책이며, 청년들이 전일제 일자리를 못 가지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시간제 철회, 정규직 확대’ 대정부 요구

공공운수노조는 공공부문의 시간제 일자리 도입이 사기업을 포함한 전체 일자리의 시간제화로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간제가 무기계약직에 이어 또 다른 종신 비정규직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부문부터 질 좋은 일자리의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단 공공기관의 시간제 일자리 강제할당 중지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간제 노동의 실태조사, 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체인력 수요 발생 시 정규직 채용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러한 입장을 각 부문별 대정부 교섭과 협의에서 관철시키고 공공기관과 학교회계직 등 주요부문 시간제 일자리 도입을 저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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