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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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중인 CJ대한통운 노동자들
파업 중인 CJ대한통운 노동자들

며칠 전 딸아이가 혼자서 약간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내용인즉슨, 자기가 좋아하는 샴푸를 작년 말에 주문했는데 해를 넘기도록 아직 도착을 안 했다는 거였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린대?”라고 물었더니 “배송업체가 파업 중이래”라고 답을 한다. 아, 마침 딸아이가 주문한 샴푸가 파업 중인 CJ대한통운으로 배송이 될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평소 이런 면에서 교육을 꽤 시켜왔던 덕인지(“노동자들의 파업은 언제나 지지해야 한다”) 아이가 아빠 앞에서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분명 속으로 분통이 터졌을 텐데(‘나는 그 샴푸가 당장 필요하다고!’) 그래도 꾹꾹 눌러 참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내가 이 칼럼을 쓰는 시간이 1월 13일 새벽.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된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 시각까지 끝나지 않았다. 2주 넘게 파업이 지속된 셈이다. 아마 많은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사는 성남 지역은 유난히 파업의 영향이 커서 주문한 물품을 제때 배송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런 불편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노동자는 종이 아니다

나도 가끔 배송을 시키지만, 그럴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배송이 되는 거야?’라며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고양이(님)을 모시고 사는 나는 고양이(님) 사료와 간식을 단골 사이트에서 주문하는데, 그 사이트에서 ‘새벽배송’ 버튼을 누르면 주문한 바로 다음날 새벽에 물품이 배송된다. 내가 반려동물 상점에 가서 사오는 것보다 더 빠르다. 우리가 많이 익숙해져서 그렇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건 정녕 기적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소비자들이 빠른 배송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쿠팡을 비롯한 배송업체들이 총알배송이니 로켓배송이니 새벽배송이니 하는 황당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기업들이 ‘혁신기업’으로 칭송을 받는다. 이들 업체들이 내세우는 모토는 하나다. “이 모든 것이 고객을 위해서다”라는 것이다.

배송뿐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모든 행위가 정당화된다. 대형 유통기업들이 골목상권을 박살낸 뒤 하는 말은 항상 똑같다. “고객이 더 편한 쇼핑, 더 싼 물건을 원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주문을 하면, 서빙 하는 노동자들이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다. 나는 이게 불편해 죽겠는데, 레스토랑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설명을 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는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부지기수다. 걸터앉을 의자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 역시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차원’에서 노동자들에게 서서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소비자로서 나는 정녕 왕인가? 아니, 왕이고 말고를 떠나 그런 왕이 정녕 되고 싶은가?

단언컨대 나는 그런 왕이 되고 싶지 않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이래 왕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 사회에서 군주의 존재는 사라졌다. 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전이라고 믿는 일 가운데 하나다. 이 위대한 진보를 누리며 사는 내가 무슨 왕 타령이란 말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만약 내가 소비자로서 왕 대접을 받고 싶다면, 기자인 나는 내가 쓰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 그래야 논리가 맞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아니,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늘 충만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누구도 나의 왕으로 모실 생각이 없다.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시민이고, 왕이 없는 세상일 일궈낸 인류의 진보를 뜨겁게 지지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왕이 아니다

“돈을 내는데 당연히 내가 왕이지!”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 모두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돈을 낼 때에는 소비자지만,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두 존재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201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제네바에서는 보통 오후 7시에 상점 문을 닫는다. 그런데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서 8시까지 영업을 연장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와 이 주제를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된 것이다.

24시간 영업하는 상점이 널려있는 우리 정서로는 이런 투표 자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은 이 일을 두고 진지하게 투표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영업시간 연장안은 반대 56.2%로 부결됐다. 그들은 소비자가 오후 8시에도 술을 마실 권리보다 그 상점 노동자들이 온전한 저녁을 누릴 권리를 더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노동경제학자인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신의 책에 이 사례를 소개하며 “이 투표 결과는 정치적 산술을 뛰어넘어 소비하는 나와 노동하는 나가 연대하여 이룬 성취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가 실린 이 국장의 책 제목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그의 책 제목은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이다.

정녕 그렇다. 나는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이기에 왕 노릇을 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연대를 하는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 이게 바로 이 국장이 말하는 ‘소비하는 나와 노동하는 나의 연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기꺼이 조금 더 불편해질 수 있다.

이 글이 공무원노조 신문에 실릴 무렵,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의 파업이 어떻게 마무리됐을지 나는 모른다. 혹은 그때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파업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나는 내가 주문한 물품의 배송이 늦어지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들의 권리를 찾는 일이 또 다른 노동자인 나의 권리를 찾는 일과 결코 다를 수 없다.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의 파업을 뜨겁게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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