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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는 기쁨이 있어 감사해요”마을버스 운전노동자로 인생 2막 출발하는 고광식
오경희 기자  |  reporter_o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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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0  1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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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무더위가 오락가락하던 7월의 첫 날, 역곡남부역을 회차하여 차고지로 향하는 021-1 마을버스에 올랐다. 얼마 전 환갑잔치를 치르고, 6월 30일 정년퇴직한 공무원해고자 고광식(인천 부평구지부, 공무원노조 해고자), 그가 바로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신입사원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 입사 첫날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향하는 고광식

1960년생 고광식은 2002년 12월 해고되어 18년 간 공무원해고자로 살았다.
그는 퇴직을 준비하면서 작년에 대형면허를 취득했고, 올해 6월 퇴직하고 7월 1일자로 버스회사 ‘기린운수’에 입사해 첫 출근했다. 동료를 만나면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선배님’이라고 호칭하며 인사를 한다. 싱글벙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하루 운행 시간 9시간, 새벽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전을 하는 그는 부천일대를 도는 마을버스 신입기사로서 최선을 다해 일한다. 그렇게 일하면 정확히 최저임금 124만원이 손이 잡힌단다. 노동의 대가치고는 가혹하다. 
“일할 수 있는 기쁨을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대형면허를 미리 따놓은 게 너무 도움이 됐고, 이제 경력을 쌓아서 큰 버스도 몰고, 조금 더 좋은 조건의 버스회사로 옮겨 그렇게 10년은 일하고 싶어요.”
예순을 넘긴 그의 눈빛에서 빛이 났다. 소풍 가기 전날 들떠 있는 어린 아이 같기도 했고, 첫 출근하기 전날 옷을 다려놓고 입었다 벗었다 하며 좋아하는 청춘의 눈빛도 닮아 있었다.

   
▲ 지난 16일 상반기 정년퇴임식에서 고광식은 전호일 위원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고광식은 1998년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공직사회가 주민과의 문턱이 높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터에   ‘1999년에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공무원 직장협의회법이 만들어진다’는 보도를 접했다. 왠지 모르게 직협이 만들어지면 주민과의 문턱이 낮아질 것만 같은 기대에 부풀었다. 그래서 직장협의회법이 만들어진 후에는 A4 2장짜리 직장협의회법을 복사해서 조합원을 설득하러 다니며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전전인 셈.

운동의 경험도 없었지만 공무원의 제대로 된 역할을 고민하며 ‘운명처럼’ 시작한 노동조합 활동이었다. 그 후, 지역별로 자생적으로 공무원 모임이 생기고 직협이 조직되면서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발전연구회(전공연)를 결성, 부평구직협 대표를 맡아 전국을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 사무총장을 거쳐 2002년 3월 2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창립대의원대회 사회자로서 출범을 선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처럼 ‘민주노조를 만들어내는’ 산통은 생각보다 심했다. 
조합원을 조직하기 위해 미친 듯이 돌아다니던 그에게 돌아온 말은 ‘정치하려고 저런다’는 비난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지역간담회를 이어갔고, 공무원노조 출범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그의 삶이 공무원노조의 역사다.

고광식의 삶에서 가장 빛났지만 시련이 컸던 해는 단연 2002년.
공무원노조를 당당히 출범시키는 역할에 앞장섰지만, 바로 수배자의 몸이 됐다.
3월 공무원노조 출범으로 첫 구속이 됐고, 그 해 10월 행자부장관실 점거로 또 다시 구속이 됐다. 그러다 결국 같은 해 12월 해고됐다. 공무원노조 1호 해고자들 중 한 명이 된 것.

   
▲ 회복투 라일하(우) 위원장과 박철준 부위원장이 고광식의 첫 출근을 축하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30대 후반 순박했던 공무원이 ‘노동자’로, ‘노동운동가’로 거듭났고, 이제는 손자 넷을 얻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청춘을 보낸 공무원노조를 충분히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해고가 되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쉬울 뿐, 자신의 선택과 걸어온 길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고광식, 그의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공무원노조 20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2007년부터 2년여 기간의 공무원노조 분열기로 기억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에게 삿대질을 했던 그날들이 그는 너무 가슴 아팠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한다면 무슨 일이든 어려울 게 없지요. 조직과 개인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이보다 좋은 건 없을 겁니다. 저는 공무원노조가, 후배 조합원들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해요”

   
▲ 고광식은 공무원노조 활동 20년을 돌아보며 행복했다고 전했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차봉천, 안현호, 김원근 그리고 임복균... 같이 공무원노조를 만들었지만 먼저 떠나보낸 동지들이 너무 그립고 미안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몫으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한 동안 정적이 흘렀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두 마리의 개를 키운대요. 선입견과 편견. 그것만 내려놓으면 사실 삶은 단순해지고, 모든 판단이 자유로워지는데 사실 쉽지가 않지요. 정년을 맞으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새벽 4시에 출근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귀가하는 고광식의 뒷모습에는 전에 없던 설렘이 있었다. 
인생 2막에서 만난 행복한 설렘이 언제나 그와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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