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공무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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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한강 몸통시신 사건, 아니 몸통시신 ‘범인자수’ 사건이라고 하는 게 이 글 주제와 맞겠다. 모텔 종업원 장씨(39세)가 시비 끝에 투숙객 A씨(32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사건이다. 수많은 엽기 범죄중 하나로 남았을 이 사건이 내 머리 속에 깊게 각인된 까닭은 범인의 자수 과정 때문이다.

연합뉴스 등 많은 언론 기사를 살펴보면, 피의자 장씨는 지난달 17일 오전 1시 종로구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안내실로 찾아가 자수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직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장씨를 강력계 형사가 근무하고 있는 ‘가까운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돌려보낸 것. 장 씨가 종로경찰서에 자수를 했으니 망정이지 중간에 마음을 바꿔 달아났다면 사건 수사는 장기화됐을 것이다.

‘내 가족의 일이라면 어땠을까?’ 감정이입이 되어 더욱 혼란스럽다. “자수하러 경찰서 갔는데 관할로 가라고 말 하는 게 경찰이 할 짓이냐?” “우리나라 공무원들 주 업무가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 생각된다.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전체 공무원 중 일부만 그렇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자신이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경찰 공무원 개인에서 나아가 공직사회 전체를 꼬집는 댓글 반응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일의 무게야 다르겠지만, 어찌 이번 사태가 경찰 공무원들만의 문제이겠는가. 국민의 심복으로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철밥통, 무사안일, 복지부동, 수동적, 모르쇠…’라는 부정적인 공무원의 이미지가 억울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이미지 또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민원이 여러 부서에 걸쳐 있는 경우 담당자를 특정하기가 힘들다. 나와 관련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만 관련이 있는 업무가 아닐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했는가. “담당자가 아니라서 해줄 게 없다”, “여기 업무가 아니니 다른 부서에 문의해라”, “이 업무는 우리 관할이 아니니 A시에 요청해라” 등. 이런 의례적이고 익숙한 패턴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지지 않으려는 마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인식, 여기에 능동적인 업무처리를 힘들게 만드는 법과 제도도 한 몫 한다.

나는 이제 3년차 새내기 공무원이다. 설렘과 기대 속에서 임용장을 받던 날,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며 국민들과 당당히 마주하는 그런 공무원이 되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하지만 잊고 지냈다. 늦게나마 초심을 다시 떠올리며 조직을 바라보니 본받고 싶은 선배 공무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태풍이 다가올 때면 이에 대비해 많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밤새 비상근무에 돌입한다. 폭설이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런 폭설로 주민이 고립되기라도 하면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직접 차를 몰고 나가 제설작업을 한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예산을 절감한 공무원들도 마찬가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쩔 수 없다’는 좌절감에 안주하기보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것부터 하나하나씩 챙겨 나가고 싶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선후배, 동료 나아가 국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참다운 공무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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