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가 성장을 해친다'는 신화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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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란에 난데없이 경제이야기를 하자니 다소 어색하다. 그러나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만 역사가 아니라 현실의 살아있는 사건도 역사의 한 부분 아닌가라는 그런 억지를 부려서라도 이 지면을 빌어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탓이 크다. 이 욕망에는 한국 경제학계와 언론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필자가 다음에 소개할 OECD의 보고서는 그 메시지가 매우 크지만, 정작 한국의 경제학계는 이 보고서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있고, 결국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나 하는 판단이다. 이것이 필자의 영역을 넘어선 경제를 말하게 된 동기이다.

 2014년 12월, OECD의 고용노동사회정책국은 '불평등과 성장‘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을 해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이 보고서는 현대 경제 실태와 정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보고서는 크게 ① 소득불평등의 장기적 확대, ② 불평등은 성장과 어떻게 연동하는가 ③ 불평등은 왜 성장을 억제하는가 ④ 어떤 정책으로 대응할 것인가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선진국의 모든 나라에서 소득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지니계수로 보여준다. 1980년 당시 OECD 평균 지니계수(완전소득평등=0, 1인의 완전 독점=1)가 0.29였는데, 2011년에는 0.32로 늘어났다. 상위 10%의 부유층 소득이 하위 10%의 빈곤층 소득에 비해 7배이던 것이 9.5배로 확대되었다. 쉽게 말해 OECD 모든 나라가 예외 없이 지난 30년간 소득불평등이 확대된 것이다. 1979년 영국의 대처가 ‘사회는 없다’는 구호를 내걸고 시작한 신자유주의 이념과 정책이 자본주의 선진국가를 지배하고 통치해 온 결과이다.

 두 번째에서는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수치로 증명하고 있다. 지니계수가 3포인트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매년 0.35%씩 하락해서 25년간 누적 GDP 감소률이 8.5%가 되었다. 이것은 소득불평등이 통계적으로도 중기적인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한다. 주요 원인은 최하위 10%의 절대소득은 물론이고 하위 40%인 하위중간층의 상대소득마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여기서 중요한 결론을 끌어낸다.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정책은 조세와 임금에 의한 재분배이며, ‘재분배는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랄만한 주장이다. 지난 30년 간 민영화, 구조조정, 규제완화, 노동시장자유화와 함께 사회복지의 감소 등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노래해왔던 사람들이 이제 정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1950~60년대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 시절 노동계급에게 양보했던 이윤을 회수하고자 시장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총공세를 펼친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하던 그룹들이 그 주장을 거둬들이고 재분배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분배를 하면 성장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주류경제학의 신화가 이제 자신들의 입으로 부인되었다.

 세 번째 장에서는 불평등이 성장을 억제하는 원인의 하나로 교육불평등을 들고 있다. 소득불평등이 인적자원의 축적을 방해하여 불리한 상황에 있는 개인의 교육 기회를 훼손시키고 기능개발을 방해해 결국에는 사회적 유동성을 악화시킨다는 분석이다. 교육연관 데이터와 OECD 성인기능조사(PIAAC)의 자료를 분석하면, 소득불평등이 확대함에 따라 저학력 양친을 둔 개인의 인적자본이 악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말을 증명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김희삼 교수가 발표한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KDI FOCUS, 통권54호)도 OECD 보고서와 같은 결론을 냈다.

 
 

 네 번째 장에서는 빈곤방지책으로 현금이전 뿐만 아니라, 질 높은 교육과 훈련, 보건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접근 확대를 통해 기회균등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사회적 투자를 제시하고 있다. 원인 규명에 따른 당연한 해결책들이다. 필자가 여기서 더 주목하는 것은 두 번째 장에서 주장한 것과 같은 내용들이 되풀이 돼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 촉진과 불평등 대책이 상관성(trade off) 관계에 있다는 견해에 종지부를 찍자.” “성장의 혜택이 자동적으로 사회전체에 파급되지 않는다.” “불평등의 억제와 역전을 촉구하는 정책은 사회의 형평성과 관계할 뿐만 아니라 부유화와도 연계되어 있다.” 이 보고서의 주장대로라면 주류경제학의 교과서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보고서를 소개하는 것은 보고서 작성 주체와 목적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이나 분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자유주의 좌파들은 형평성, 사회정의라는 차원에서 분배 문제를 제시해왔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지난 30년 간 신자유주의를 이끌던 그룹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장기적인 대침체’ 국면에서 어떻게 하면 성장을 이끌어낼 것인가는 관점에서 OECD는 소득불평등에 주목한 것이다. 분배라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불평등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소득불평등이 성장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2016년 6월 IMF가 발표한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세계적 조망(Causes and Consequences of income Inequality:A Global Perpective)’ 역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기왕의 ‘비즈니스 프랜들리’ 경제정책으로는 더 이상 성장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처절한 자기반성이자 신앙고백이다. 그렇기에 현 정부가 내건 소득주도 성장정책 역시 좌파정부라서가 아니라 소득주도 성장론이 시대정신의 하나로서 제시된 것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시장주의자들과 경제신문들, 그리고 주류 언론은 눈만 뜨면 소득주도성장이 한국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 자신들이 그토록 믿고 따르던 OECD와 IMF조차 폐기한 이념을 여전히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무지와 미몽에 쌓여 자신들의 신이 변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일까. 사회양극화에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하루 빨리 빛의 세계로 나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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