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개각, 단임제 정권의 단기 성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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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철회와 자신사퇴로 낙마한 조동호 과기부장관 후보자(왼쪽)와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우) 
지명철회와 자신사퇴로 낙마한 조동호 과기부장관 후보자(왼쪽)와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우) 

문재인 대통령의 3·8 개각이 부실의 도마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했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청와대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미흡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시행한 개각이 도리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정권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 인사를 비판하며 고위공직 인사 5대 원칙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인사를 고위공직에서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첫 내각 인선부터 인사 청문 과정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자격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2017년 11월 기존의 5대 기준에 성(性) 관련 범죄와 음주운전 적발을 포함한 7대 인사검증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실제 인사는 첫 내각 구성 때부터 기대에 어긋났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각각 4개 분야에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사과를 하고 유감을 표명한 뒤에 임명되었다. 부동산 투기, 꼼수 증여, 위장전입, 논문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진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은 청와대가 이토록 도덕성이 떨어진 부적격 인사를 인선한 데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8 개각 후보자 2명의 낙마로 현 정부 출범 이후 10명의 장관급 고위 공직 후보자가 사퇴했다.

한두 번이면 실수라고 하겠지만 이 정도면 사안이 엄중하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낙마한 인사들은 모두 당사자들이 사퇴하는 형식을 취했다. 대통령이 자기가 추천한 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자진해 철회한 것은 인선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 청와대의 인사 추천·검증 제도에 문제가 있고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는데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민심 이반이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31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장관 후보자 지명철회를 발표하고 있다 
31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장관 후보자 지명철회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의 인사 추천·검증 제도가 문제인 건 사실이지만 3·8 부실 개각의 근본 원인은 이것이 아니다. 3·8 개각 발표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 중반기를 맞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 내기가 중요한 시점에서 능력 있는 인사를 발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31일 오전 인사청문회 관련 브리핑에서 “해외 부실 학회 참석 사실을 제외하고는 청문회 과정에서 지적된 흠결은 청와대 인사 검증 과정에서 확인됐다. 그럼에도 조 후보자는 5G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최 후보자는 해당 분야의 자질을 높이 평가해 장관으로 기용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발언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능력’이다. 청와대가 고위 공직자 인선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대목이다. 청와대의 공식 발언에서 확인되듯이 ‘능력’을 최고로 치는 청와대의 인선 기준이 근본 문제이다. 3·8 개각 인사의 실패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성과 내기에 연연한 나머지 도덕적 흠결은 뒷전인 채 능력을 앞세우고 보자는 그릇된 판단이 초래한 실책인 것이다. 물론 부적격 후보자들의 능력이 과연 제대로 검증된 능력인지도 의문이지만 추천·검증의 부실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다.

3·8 개각은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포석이다. 문 대통령은 개각 때마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정부가 실적으로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는 정당하며 청와대가 그에 응답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응당한 책무다. 하지만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능력 만능주의는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촛불 정권’을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만 안겨주고 반감의 여론을 증폭시킬 뿐이다. 국정 쇄신은 커녕 되레 정부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려 개혁 동력을 약화시킬 따름이다.

3·8 부실 개각의 교훈은 무엇일까? 단기 성과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단기 성과주의는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단기 수익성 논리의 산물이다. 특히 단임제 정권은 단기 성과주의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선의 기회가 없으니 한 번 실패하면 끝이며 임기 안에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근시안의 강박증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단기 성과주의에 연연하여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조급증은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금언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주로 경제와 민생 분야의 실적이 미흡한 탓이다. 경제와 민생이 민주주의의 바탕이고, ‘헬조선’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정부이니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민생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은 간단치 않으며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는다. 경제 권력을 장악한 채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주범 재벌체제의 개혁 없이는 민생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 민생고의 근본 뿌리에 있는 낡은 적폐의 청산 없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고 집착하는 것은 주관적 과욕이다.

다음 달이면 문재인 정권 출범 2년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의 이 대목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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