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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참담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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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1  09: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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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하는 한국군과 미군

2018년, 격변기(전환기)를 실감하는 역사적인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에는 객관 정세가 눈부시게 변하는데 오히려 운동 주체의 의식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에 대한 평가조차 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가 바뀌고 이제 새해 정세 전망에 대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3년차에 들어선다.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복직이라든가 KTX 승무원들의 복귀와 같은 부분적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을 기대했으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 민생이 개선되기는커녕 되레 가계소득격차가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희생된 24살 김용균 청년은 2016년 5월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러져간 19살 김 군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하여 촛불항쟁 이전의 타성대로 정부가 마음에 안 들면 ‘우파’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 “물러나라!”고 항의·규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터다. 물러난 다음에 더 나은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주관적 환상과 즉자적 비난을 뛰어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필요하다.

미국이 올해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으로 10억 달러(1조1335억 원)를 내라고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담금 유효기간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해 부담한 방위비분담금 9602억 원에서 18% 넘게 증액하라는 과도한 요구를 들이민 것이다. 이는 2019년 한국 국방비 증가율 8.2%의 2배가 훨씬 넘는 금액이다.

2017년에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남과 북은 물론 미국도 뜻을 모았다. 그런데 2019년 국방비가 11년 만에 최고치로 증액되고 주한미군 주둔지원금이 이례적으로 폭증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이다.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실감은커녕 오히려 민생이 후퇴하는 현실 앞에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고 이구동성이다.

국가주권에서 핵심이 외교주권과 군사주권이다. 국제사회에서 부탄을 온전한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인도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군사주권을 못 가진 나라는 부탄과 한국뿐이다. 우리처럼 분단국가인 대만도 군사주권을 남의 나라에게 이양한 적이 없다. 미군이 주둔하는 여러 동맹국들 가운데서 방위비분담금으로 막대한 현금을 미국에게 바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미군이 35,000여 명 주둔하는 독일은 주둔지원금을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간접비용만 지불한다.

   
▲ 한 미 방위비 분담금 현황

2017년 12월말 현재 미집행된 방위비분담금이 1조788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방위비분담금 9602억 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미국이 불법적으로 방위비분담금을 이용해 얻은 이자소득 만 최소 3500억 원이 넘는다. 정부는 9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국회 비준 당시(2014년 6월 7일) 방위비분담금에서 발생한 이자소득을 확인해 차기(10차 SMA) 협상 때 방위비분담금 총액에 반영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바 있다. 지켜질 리 만무한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SMA 유효기간을 현행 5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협상을 해마다 벌여서 방위비분담금을 더 많이 받아내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날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이전에 1년이었던 주일미군 지원금 협정 유효기간을 5년으로 늘려주었다. 그런데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정반대로 현행 5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한다. 5년마다 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니 해마다 ‘삥’을 뜯어야겠다고 을러대는 조폭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봐주고 만만한 한국 만 등쳐먹겠다는 심보가 고약하기 그지없다. 미국 정부가 우리를 얼마나 만만한 호구로 여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유는 명확하다. 주권이 없기 때문에 호구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군사주권이 없다는 것은 국방비 책정과 그 용도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기종의 무기를 얼마나 구매할지에 대하여 한국 정부가 자주적으로 판단‧결정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2006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가 도입한 미제 무기는 36조 원이 넘어 한국은 세계 최대의 미제 무기 수입 국가였다. 미국에게 군사주권을 이양한 값비싼 대가다. 평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방비가 큰 폭으로 증액된 것, 그리고 1조 원이 넘는 방위비분담금이 남아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게 거액의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군사주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막대한 군사비를 부담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만만한 호구 취급을 당하는 신세다. 주권이 없으니 노예 취급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터무니없는 방위비분담금을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감정적 화풀이가 아니라 군사주권이 없는 우리나라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다.

2017년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선언이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의 삶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공약과 한반도 평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회의와 자괴감이 싹트게 마련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이 한국 노동자‧민중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군사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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