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의 목숨 값은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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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용균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한 고인의 동료들
▲ 고 김용균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한 고인의 동료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사람 한 명의 목숨 값은 얼마인가? 질문이 너무 잔인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잔인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질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이 땅에서 사람 한 명의 목숨 값은 도대체 얼마로 쳐주는가?

한국서부발전 소속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세 꽃다운 노동자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미 이 발전소에서 지난 9년 동안 무려 12명의 노동자가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공장이라면, 적어도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을 때 최소한의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러지 않았다. 1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동안 이들은 효율이라는 이름의 돈벌이를 멈추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 값을 계산하는 잔인한 자본주의

목숨 값 운운하는 것이 몹시도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자본주의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전략이기도 하다. 믿을 수 없지만 미국 연방정부는 1973년 공식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매긴 적이 있었다.

미국고속도로안전협회에서 한 사람의 사망이 사회에 끼치는 비용으로 20만 달러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연방정부의 이 공식적인 계산은 실로 충격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제너럴 모터스)이 생산한 차량에서 각종 결함이 발견됐다.

충격적인 사실은 GM이 차량 결함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GM은 왜 리콜 등을 통해 차량 결함을 고치지 않았을까? GM은 1973년 엔지니어인 에드워드 이베이의 보고서에 따라 사건을 다음과 같이 처리했다.

① 차량 화재로 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GM은 한 사람 당 손해배상금 20만 달러를 물어야 한다.

② 이미 판매된 자동차가 4100만 대이므로 500명 사망자 배상금을 4100만 대로 나누면 차량 한대 당 손실액은 2달러 40센트다.

③ 그런데 4100만 대를 모두 리콜해 수리를 할 경우 차량 한대 당 수리비용은 8달러 59센트로 계산된다.

④ 엔진 결함이 있는 차를 수리하기보다 그냥 놔두고 사망자에게 배상금을 물어주는 것이 차량 한대 당 6달러 19센트, 총 2억 5379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⑤ 따라서 GM은 사람이 죽건 말건 수리를 피하고 2억 5379만 달러를 절약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GM은 진짜로 이 길을 선택했다. 이게 GM만의 일일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1970년대 초반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생산했던 핀토 모델은 안전성 측면에서 심각한 위험이 있다는 문제제기가 빗발치던 상태였다. 그런데 포드는 1973년 그 악명 높은 그러시-사운비 보고서(Grush-Saunby Report)에 의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처리했다.

① 차량 결함으로 예상되는 사망자와 화상 피해자는 각각 180명 씩. 여기에 1인당 사망 보상비 20만 달러와 화상 보상비 6만 7000달러를 각각 곱하고 사고차량 보상비(2100대×700달러)를 더하면 4953만 달러가 소요된다.

② 반면 핀토 모델 등 문제가 있는 차량 1250만 대를 리콜해 수리할 경우 드는 비용은 1억 3700만 달러로 계산된다.

③ 따라서 차량을 수리하는 것보다 그냥 놔두고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무는 것이 총 8747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사람이 죽어도 그 값이 계산돼 있으니 돈으로 물어주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본모습이다. 아니라고 부인해도 소용이 없다. 자본은 사람의 목숨 값에 대해 이미 계산을 마쳤고,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

광기를 멈춰야 한다

우리나라라고 다른가? 이번에 사고가 난 태안화력발전소는 이미 죽음의 공장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2010년 1월 22일, 이곳에서 창고 신축공사를 하다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한 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딱 9개월 뒤인 9월 20일에 또 다시 추락 사고가 벌어져 하청 노동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2년 뒤인 2012년 3월 안전 가시설 하나가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 두 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고작 한 달 뒤 또 다시 안전 가시설이 무너져서 한 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10년에는 추락 사고로 두 명이, 2012년에는 비계라고 불리는 안전 가시설이 무너져 다시 3명의 하청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 끝이 아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설비공사장에서 떨어지는 망치에 맞아 목숨을 잃었고 그로부터 1년 뒤인 2013년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다가 한 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2014년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냉각수 저장소 안으로 추락해서 목숨을 잃었고 2년 뒤인 2016년 두 명의 하청노동자가 똑같은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숨진 김용균 노동자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서 숨졌다. 그런데 딱 1년 전인 작년 11월, 똑같은 사고로 한 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같은 사고가 1년 새 반복된 것이다.

사람이 빠가사리가 아닌 한, 사고가 반복되면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서부발전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이 연이어 죽는 것이다.

정녕 한국서부발전이 빠가사리여서 조치를 생략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게 죽여 놓고 보상을 하는 것이,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안전을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간부들도 승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서부발전은 답해야 한다. 당신들이 책정한 하청 노동자들의 생명 값은 도대체 얼마인가? 이 짓을 해서 얼마를 벌었기에, 9년 동안 12명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던졌느냐는 말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적어도 한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해놓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이 미친 짓을 이제 멈춰야 한다. 그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임무이고, 한국사회의 책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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