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평화와 농민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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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에서 20일까지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회담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5천년을 함께 살다가 70년 동안 갈라진 분단의 아픔을 뒤로 하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시대로 들어서는 감격과 흥분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19일 발표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현재의 남북관계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나가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평양공동선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군사분야 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것이다.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과 공중에 각각 평화지대, 평화수역, 평화구역을 조성하며,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것은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정전체제 아래서 중무장한 전투부대들이 전 세계에서 최고로 밀집돼 크고 작은 무력충돌을 수시로 일으켜 긴장을 고조시켰던 일촉즉발의 화약고가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방 정책이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의 군사분야 합의서는 ‘단계적 군축’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국방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나흘 전인 14일 3천톤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축사에서 “‘힘을 통한 평화’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흔들림 없는 안보전략”이라며 “강한 군, 강한 국방력”을 역설했다. ‘힘을 통한 평화’가 말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정책으로 뒷받침되고 있으니 문제다.

정부가 제출한 2019년도 국방예산은 무려 8.2%나 증액됐다.(이명박 정부 평균 5.2%, 박근혜 정부 평균 4.1% 증액) 방위력개선비의 경우 전년 대비 13.7% 늘어난 15조3733억 원이 편성됐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의 평균 증가율 4.4%의 3배가 넘는다. 여기에는 미국으로부터 해상초계기 6대와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64기를 사들이는 예산도 포함된다. 막대한 예산을 증액하여 무기를 개발, 구매하는 것은 군축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방 정책이 앞뒤가 안 맞고 모순적이면 군비의 축소와 증강 중에서 어느 것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평화는 결코 말(선언)로 이뤄지지 않으며 정부의 정책은 앞뒤가 맞고 일관성이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지난달 30일 해남군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내년부터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가구당 연 60만원씩 해남군 전체 농가 1만4579가구가 대상이다. 농민수당은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농업이 국토환경과 자연경관 보호, 토양유실과 홍수 방지, 생태계 보전 및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유지 등 다양한 역할과 다원적 기능을 한다는 데 대한 지자체 차원의 ‘공식 인증’인 셈이다. 해남군의 농민수당은 금액이 미미하지만 제도화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농업과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의 하나가 농민수당이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생활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젊은이들이 일자리 찾기 힘들고 생활비 비싼 도시에서 고생할 필요 없이 농촌으로 이주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이 안정되면 도시 과밀화가 해소돼 집값이 안정되고 교통난도 완화될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과다 출혈경쟁이 줄어 문을 여는 10개 중 9개가 1년 안에 폐업하는 악순환도 감소할 것이다. 농촌을 살리는 것이 농촌과 도시의 균형 발전과 공존상생의 사회로 가는 길이다.

농민수당의 지급 대상, 금액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농가 단위로, 청년농·영세농·고령농 등 주로 개별농업인 단위로, 농민의 범위를 넓혀 농촌주민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자는 주장 등이다. 지원 금액은 월 50만 원 정도로 모아지는 것 같다. 물론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전국 110만 농가에 호당 월 50만원씩 지원할 경우 연간 총 6.6조원이 소요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2019년도 농림·수산·식품 예산은 고작 1.1% 증액에 그쳤다. 국방 예산 늘리기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군사비 지출 순위에서 세계 10위다. 한국은 매년 정부 재정의 약 15%를 군사비로 쓰고 있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비 2.5배나 된다. 더구나 남북이 군축 평화에 합의한 상태다. 만일 내년도 국방 예산을 올해 대비 5%만 감축한다면 감축분 2.2조원에다 정부가 증액하겠다고 제출한 국방비 3.5조원을 더하면 내년부터도 농민수당 지급이 가능해진다. 기존의 각종 농업 관련 직불금 예산을 더하면 6.6조원의 예산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정치의 핵심 요소로 “먹거리와 군비를 충족하는 것, 민중의 신뢰를 얻는 것(足食足兵 民信之矣)”을 든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버려야 한다면 우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공자는 병이라고 했고, 결코 버려서는 안 될 것으로서 민중의 신뢰를 꼽았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곧 국가의 구성원인 민중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는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민중이다. 평화가 정전상태의 종식을 뛰어넘어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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