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과 삼성이 만든 시스템에서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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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소리 기자
▲ 민중의 소리 기자

“요즘도 계속 경제부에서 일하는 거지? 네가 나이가 좀 있어서 그렇긴 한데, 지금이라도 정치부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걸 고려해보는 게 어때?”

“예?”

서로 다른 조직에 몸담은 지 꽤 된 언론사 선배가 몇 년 전 만나 필자에게 한 조언이다. 사실 언론사 생활 대부분을 경제부에서 보낸 필자에게 그 조언은 너무 생소했다. 당연히 이유도 궁금했다.

“언제까지 거기서 일할 수 있겠어? 결국 나와야 하잖아? 그러면 경력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네 나이에 민중의소리에서 나오면 갈 데가 기업 홍보실밖에 더 있어? 그런데 요즘 대기업에서는 경제부 출신을 거의 안 뽑아줘. 오히려 아는 정치인이 많아야 가치가 높아지거든. 그러려면 경제부가 아니라 정치부 경력이 있어야지.”

이 대화는 이후 몇 가지 사소한 일상적 내용을 주고받으며 흐지부지됐다. 후배의 미래를 걱정해주는 선배의 마음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었던 이재용 판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5일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판을 담당한 정형식 판사를 특별 감사하라는 국민 청원이 사흘 만에 2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분노는 거셌다.

정형식 판사는 이재용을 구원하기 위해 상식적으로 명백히 인정되는 승계 작업의 존재를 부정했다. 패션 및 놀이동산 회사(제일모직)와 무역 및 건설회사(삼성물산)를 합병하는 코미디가 승계 작업과 관련이 없다면 그런 개그를 삼성은 왜 벌였단 말인가?

이재용이 국민연금을 동원해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은 왜 무리해서 그 코미디 같은 합병에 찬성했다는 이야기고? 그리고 당시 국민연금을 부당하게 조종해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한 문형표(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홍완선(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왜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가? 이재용이 청탁을 하지도 않았지만 문형표, 홍완선이 멍청하게 자발적으로 합병에 찬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제발 그러지들 말아야 한다. 아무리 이재용을 구하고 싶어도 문형표, 홍완선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다.

정형식 판사의 판결은 어떤 면에서도 논리가 맞지 않는다. 우리가 법리를 몰라서 하는 주장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판결 다음날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용 판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을까? 개별 법관의 독립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법부의 문화를 감안하면, 현직 부장판사가 다른 부장판사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정형식 판사의 판결이 엉망진창이었다는 이야기다.

재벌의 뒷배를 봐준 자들이 누렸던 호사들

2010년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 최철원 씨가 고용 승계 문제로 항의하던 한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팬 일이 있었다. 이게 바로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됐던 유명한 ‘재벌 2세 맷값 사건’이다. 최철원은 이 노동자를 사정없이 구타한 뒤 “한 대에 100만 원씩이다”라며 맷값으로 2000만 원을 휙 던지고 나갔다.

하지만 엽기적 폭행을 저지른 최철원은 집행유예 판결로 실형을 면했다. 그런데 13일 뒤, 검찰이 엉뚱하게도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노동자를 업무방해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해 버렸다. 때린 놈은 두 발 뻗고 자는데 맞은 노동자가 기소를 당한 것이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기소를 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박철 검사였다. 그런데 박철은 이듬해 SK건설 전무로 영입됐다. 당시 SK그룹은 “맷값 사건과는 절대 무관한 영입”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그 박철이라는 사람, 지금도 SK그룹에서 부사장으로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경찰총장, 그러니까 대한민국 경찰 중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던 최기문 전 경찰총장은 2005년 한화그룹의 고문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그는 2007년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이 터졌을 때 후배 경찰들에게 사건 무마를 청탁한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최기문은 서울경찰청장과 남대문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직 치안 총수의 전화를 받은 후배 경찰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선배가 경찰 명예를 다 떨어뜨린다”고 비난했을까? 아니면 “아, 나도 언젠가 저렇게 대기업 임원이 돼 편안한 여생을 누릴 수 있겠구나. 그러니 잘 처리해 드려야지”라고 생각했을까? 한 국가의 치안 총수를 지낸 인물이 은퇴 후 재벌 총수의 폭행 사건 뒤처리나 하고 다니는 현실, 그것이 바로 21세기 한국 사회의 현 주소인 것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 조준웅은 이건희 회장 등 관련자를 모조리 불구속기소하며 완벽한 면죄부를 안겨줬다. 2009년 12월 이건희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그런데 이듬해 1월, 조준웅의 아들이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했다. 사법고시를 10여 년 낙방한 조준웅의 아들은 직장 생활 경험이 전무했는데도 당당히 국내 최대 기업의 과장이 됐다.

 

재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굴복하는 한국 사회

이게 바로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이재용과 삼성은, 그리고 한국 재벌들은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지도층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당장 무언가를 쥐어주기도 하고, 미래의 달콤한 보상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지도층들은 ‘나에게도 언젠가 저런 혜택이 돌아올지도 몰라’라는 은밀한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이 자신을 옭아매 스스로 재벌의 노예가 된다.

삼성이 이재용 석방을 위해 정형식 판사에게 뭔가를 제안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형식 판사는 국민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재벌의 편에 선 대가로 나중에 재벌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 자식을 대기업 과장으로 입사시켰던 수많은 전직 사회 지도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은 ‘언젠가 삼성과 이재용이 나에게도 떡고물을 던져주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비겁한 자들이 돼 버렸다.

재벌이 미워서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재용이 미워서 구속하자는 게 아니다. 이재용과 재벌들은 너무 많은 불법을 저질렀고, 너무 많은 특혜를 누린다. 그들의 불법은 사회가 대신 감당해야 할 부담이 되고, 그들이 누린 특혜는 우리 민중들이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파괴한다. 삼성과 이재용이 부당하게 착취한 돈과 권력은 사법부와 언론, 검찰과 경찰 등 주요 시스템에 파고들어 그들 사이에서 재분배된다.

재벌 개혁을 위한 숱한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시스템을 부수는 것이다. 이재용의 죄를 제대로 단죄하는 것이 이재용으로부터 받는 떡고물보다 더 가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용과 재벌들의 뒷배를 봐주고 떡고물을 받아먹는 자들에 대한 실로 강력한 사회적 단죄가 필요하다. 그리고 재벌에 유혹에 기대지 않아도 많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재용과 삼성이 만들어놓은 그들만의 시스템에서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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