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에게 "너, 잘 살고 있냐?"고 되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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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만에 꺼내 든 ‘전태일 평전’. 책을 다시 펼치기도 전에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착잡하기까지 했다. 몸을 불태우며 세상을 향해 외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고인의 외침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때문에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삶을 알게 된 것은 1990년 중반이었다. 학생회실 책꽂이를 훑어보던 중 그의 이름 석 자가 쓰인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전태일 열사와의 연결고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의 평전에는 당시 청계천 노동자들의 삶이 여과 없이 투영돼 있었다. 슬펐고, 여전히 슬프다. 20여 년 전, 분노에 끓었던 피가 지금쯤이면 가라앉을 때도 됐는데 여전히 끓는다.

청계천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던 청년 전태일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비좁은 사업장 안에서 초등학교 5~6학년 될 법한 소녀들이 일당을 받기 위해 점심을 굶고 일하는 모습, 공장 주인의 착취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볼 시간조차 빼앗겨 버린 재봉틀을 돌리는 여성 노동자들, 기관지염을 비롯해 빈혈 등 각종 질병이 넘쳐난 청계천 현실 등등.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책을 읽으면서 열악한 근로환경과 보호장치가 없는 인권 사각지대에서 자본가의 착취를 당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과 유년시절부터 힘겹게 성장해 온 그의 삶이 또 다시 오버랩 된다.

1970년 11월 13일, 그는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산화함으로써 대한민국 노동운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다. 근대화와 산업화 명분 아래 박정희 정권 시대에 억눌리고 가려졌던 노동자들의 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오늘날로 치자면 전국 곳곳에서 산별노조가 태동하는 도화선이 됐다.

화염에 휩싸여 새까맣게 그을린 주검으로 자본가에 맞선 청계천 봉제 노동자 전태일. 고인의 죽음 후 대한민국 노동계와 우리 사회는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또 우리에게 노동에 대한 존엄한 가치 인정을, 더 나아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한 장본인이었다.

올해로 청년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47년째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인간다운 삶을 외치다 우리 곁을 떠나간 지 반세기 가까이 흘렀으나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다.

뼈아픈 현실이 아이러니다. 아름다운 한 청춘이 목숨을 맞바꿔가며 주장했던 노동환경 개선의 목소리가 47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고 있어서다.

전국공무원노조를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 해 박근혜 정권을 끌어 내린 촛불항쟁 과정에서 세상을 향해 적폐를 청산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목청껏 외쳤다.

 
 

우리가 외친 적폐 청산의 대상은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각종 부조리이며, 오랜 관행처럼 여겨졌던 폐단들이다. 그리고 여러 폐단 중에 노동자가 주인인 평등한 세상에 반(反)하는 이들도 적폐이다.

오랜 고뇌 속에서 인간적 취급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의 현실을 새까맣게 그을린 주검으로 항변한 청년 전태일 열사의 염원은 이러한 적폐 세력들이 이 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아니었을까.

20여년 만에 펼쳐 본 ‘전태일 평전’은 여전히 아픈 대한민국의 실상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 전태일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개척자와 같은 존재이다.

평전을 읽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잘 살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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