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태평양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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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미카제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여 자살 공격한 일본 제국의 결사 특공대이다.
▲ 가미카제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여 자살 공격한 일본 제국의 결사 특공대이다.

희뿌연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바다와 해안선엔 포격을 준비하는 미군들로 부산했다. 하늘엔 미군 전투기들이 이따금씩 굉음을 울리며 지나갔다. 하늘과 바다와 땅이 온통 미군들로 둘러싸인 형국이었다.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섬은 고립된 지 오래였다. 1945년 1월이 되었어도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깊은 산속 안전한 벙커에 은신한 대본영에선 옥쇄만 외쳤다. 그토록 허풍을 떨던 일본제국군은 쥐새끼들 마냥 흙구덩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퀭한 얼굴에 삐쩍 마른 다리사이로 통통한 구더기들이 꿈틀댔다. 살아서 섬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헛된 희망마저 사치스러웠다.

착검 소리가 침묵을 깼다. 흙구덩이 속은 돌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칠게 파놓은 참호 너머 아침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햇살은 날카로운 빛이 되어 칼날을 번쩍였다. 낡은 군화 밑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발끝에 채였다. 참호는 물론 들판 여기저기 흩어진 시체들이 치열한 전쟁 공간을 점령한지 오래였다.

“천황폐하 만세!”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에서, 조선에서, 대만 등지에서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끌려온 앳된 청춘들이 기진맥진한 몰골로 참호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총검을 쥔 두 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미친개처럼 악다구니를 처대지만, 서로의 마음은 살아서 엄마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부르튼 입술로 온통 “천황폐하 만세”를 외칠 뿐이었다.

참호 밖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오로지 빗발치는 총알과 포탄 세례뿐이었다. 살가운 위로의 말도, 부드러운 격려의 말도 없었다. 삶과 죽음이 갈라서는데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 태평양전쟁시 일본군의 할복사진
▲ 태평양전쟁시 일본군의 할복사진

1941년 12월 7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전개된 태평양전쟁은 젊은 청춘들을 더더욱 구역질나는 흙구덩이에 처박아버렸다. 전쟁 결과, 공식통계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가 천만 명에 달했다. 이 외 파급된 피해규모는 숫자를 넘어 무의미한 살육을 대변한다.

그러나 책임지는 자가 없었다.

옥쇄를 외치며 할복자살을 강요한 대다수 일본 수뇌부들은 자기 목숨 아까워 꽁무니 빼기 바빴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구대천지원수 미군을 최고 국빈대우 하는 철저한 이중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요코하마 항에 입항하는 맥아더를 향해 납작 엎드렸다.

전쟁의 수괴이자 A급 전범인 히로히토 일왕은, 일신의 안위와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한밤중 몰래 맥아더 숙소를 찾아가 아첨하며 굽실거렸다.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일본을 지배한 맥아더에게 읍소하며 나약한 노인 흉내를 냈다.

결국 죽은 자들만 소모품처럼 쓰다 버린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은 천황제에 있고, 우익들은 천황을 핑계로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죽음을 강요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도리어 피해자 코스프레(cospre)로 재침략을 준비 중이니, 이 얼마나 섬뜩한 현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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