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대리사회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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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리’라는 단어가 아주 비주체적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대리’, 무언가의 ‘대리’라는 것 아닌가. 그러나 ‘대리’는, ‘남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행위나 사람’이라는 주체적인, 독립적인 의미였다.

저자는 글쓰기 강사이자 연구원이었다.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책을 펴낸 이후, 2015년 12월에 수년간 몸 담았던 대학을 뛰쳐나왔다. 그는 이전까지 학교를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강사를 하면서, 학생도 아니고 대학교수처럼 정규직도 아닌 중간에 끼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대학 강사에게 건강보험료를 내주지 않는다. 정확히 4대보험 가입대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당 강사비를 벌기 때문에 사업소득세는 내야한다.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들은 결혼하고도 건강보험료를 내기 힘들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다가 아이가 태어나서야 혼인신고를 한다.
 
나도 한때 담배연기 자욱한 대학원 연구소에서 처박혀 논문만 읽고 쓰기를 반복했던 적이 있다.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구내식당 가는 시간이 아까워 점심시간에는 컵라면을 먹고,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밤을 새다 코피가 터지기도 했다. 특히 원서나 고전을 읽을 때면 시간은 더디게 가고 편두통에 시달렸다. 나는 지방대 출신이다. 교수들이 박사를 졸업해도 ‘본대생’이 아닌 지방대 출신들에게는 시간강사조차도 한참 뒤에야 주는 것을 보았다. 7년여의 대학원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학교에서 나왔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선배들은 여전히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나마 강의 시간이 많거나 단체 연구원으로 들어간 선배들은 먹고 살만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배들, 대학만 전전하는 선배들은 여전히 힘들다. 안타까울 뿐이다.

저자는 학교를 나와 맥도날드에 취업을 한다. 4대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잘릴 위험이 없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다. 그는 1년 반 정도 일을 한 뒤,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퇴직을 한다. 맥도날드에서는 퇴직금 50만원을 주었다. 조교와 시간강사로 8년을 일하고 그만 두었을 때는 퇴직금이 한 푼도 없었다. 저자는 이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한다.

어느 외국인은 “한국에는 요정이 산다”라고 했다. 술에 취하면 대신 운전해 집까지 데려다주는 요정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고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고, 마치 요정이 다녀 간듯하다. …… 대리기사들 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보이지 않는 요정이 산다.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주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항상 존재한다. 타인이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을 치우고 사고를 대신 처리해 주고 모두가 꺼리는 그 어떤 번거러운 일을 대신해 준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리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자신의 노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이처럼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은 대개 우리가 ‘보고싶지 않은’ 노동이다.

자신을 감싸 안아준다고 생각했던 공간, 학교가 오히려 권력에 무릎 꿇게 하고 줄서기에 급급하게 만들며, 나약하게만 만들었던 공간이었던 걸 저자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한 지면에 연재하는 동안 저자의 학교 선배들이 집 앞으로 찾아왔다. 선배들은 저자에게 ‘시간강사를 폄훼하고 교수를 욕보이는 짓을 당장 그만두고 교수에게 가서 빌’라고 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많이 슬펐고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서늘해졌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겨우 하나의 병폐’를 본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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