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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비선-삼성에 부역한 ‘언론’이라는 게이트[전규찬 칼럼]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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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1  09: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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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카프카의 작품들은, 카프카라는 작가적 존재 그 자체와 더불어, 이해불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가장 잘 알려진 <변신>이나 <성>, <소송>을 비롯해, 현대 사회의 시스템적 불안과 관료적 부조리, 구조적 모순을 담아낸 대부분의 역작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지난 그의 소설들이 지금까지 널리 세계적으로 읽히는 것은, 그의 이야기들이 현대사회 일반의 국가체제 작동 내면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탈)현대체제에 관한 미세한 통찰, 비판적 성찰의 서사를 제공하는 텍스트들인 까닭이다.

그 중에서 좀 더 알려진 <법 앞에서>라는 단편은,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즉 국가-비선-자본의 삼각 게이트에 의해 무너진 대한민국에서 바로 지금 재독할 역작이다. 2016년 가을의 훌륭한 문학이다. 무늬만 삼권분립의 공화국이었지 실상은 모든 권력이 일 점 비선에 집결된 설정의 추태가 드러났다. 대통령 배후공모세력들이 지배하는 독재적 집정시스템이 충격적으로 까밝혀졌다. ‘헬 조선’의 구체적 실상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무법․위법․탈법의 게이트가, 100만 촛불의 하야시위가 있은 후에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법 앞에서, 검찰의 참조인 조사요구 앞에서, 허위의 대통령을 내세워, 버티는, 희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사정이다.

이런 측면에서와 함께, <법 앞에서>라는 작품은, 박근혜/국가-최순실/비선-이재용/자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한 그것을 안팎에서 보위코자 축조된 ‘언론’이라는 제4의 게이트 실상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어느 날 한 시골뜨기 사내가 그 게이트로, 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문지기가 가로막는다. “지금은 안 돼요!” 문 밖의 사내가 오랜 대기의 세월이 흘러 임종을 맞이하자, 문지기는 이렇게 속삭인다. ‘이 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만을 위한 문이었는데, 당신이 죽으니 나도 이젠 게이트를 닫고 떠나겠소.’

   
▲ 프란츠 카프카(188.7.3~1924.6.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 현재 체코 수도인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 <변신>, <심판>, <성> 등 20세기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소설을 남겼다. (사진, 내용 출처. 다음 백과사전)

이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소설에서 문은 범문을 가리킨다. 그것을 우리는 현실주의적으로 전유해, 오랜 기간 얽히고설킨, 은밀한 부정과 비리의 거래로 유착된, 공주-미실-재벌 3인조 사이의 ‘서로 주고받기’ 섭정체제를 보위하는 제4의 관문으로서의 언론게이트로 치환시킬 것이다. 대한민국을 온통 부정과 비리, 부패와 타락의 나락으로 빠트린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설치된 추악한 성문이다. 외부의 빛이 안을 비추지 못하도록, 내부의 어둠이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기밀과 조작 그리고 선전으로써 진실을 철저히 봉쇄했던 거대 벽이다. 정권-비선-자본권력의 문지기, ‘언론’권력이다.

대중들의 분심폭발이 100만 촛불로, 70%를 넘는 하야․탄핵 여론으로, 대통령 국정 지지도 5%로 사그라지기는커녕 계속해 증강해 가고 있다. 그러면서 분노한 온․오프 거리의 민심은 주류의 신문, 제도의 방송에 ‘공모(자)’라는 낙인을 콕 찍기 시작했다. 대중의 정확한 판단이며, 그에 따라 변절의 행보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닥 친 실세들을 비판하는 척 하고, 민심을 쫒는 선의의 채널인양 위장하며, 여론을 대변하는 매체인 양 환심 사려는 움직임들이다. 기회주의적 처신이다. 명백한 사기극이다.

이에 더 이상 농단․현혹당하지 않을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국가-비선-재벌의 권세 유지와 누출 방지를 위해 구성․기동한 거짓 선전의 ‘언론’ 성문을 해체시키는 프로젝트다. ‘언론게이트’라는 부역의 벽을 철저히 탐구하고 상세하게 조사하여, 그 민의반역과 권력굴종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에 남기고 세상에 공표하는 책무다. 문지기로 작동한 ‘언론게이트’ 없이는 공화국을 농단하고 헌법질서를 유린한 저 3인조 게이트라는 것도 애당초 싹틀 수 없었다. 박근혜-최수실-이재용, 국가-비선-자본의 성을 보위하는 성벽이자 충성스런 지지대며 비굴한 부역자인 언론게이트를 활짝 열어 재끼는 몫이 남는다.

   
▲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

전국언론노조 에스비에스 윤창현 본부장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재미난 표현을 쓴 바 있다. 국회가 특위 및 국정조사 여야 합의내용에 언론게이트를 배제한 것을 규탄하는 자리에서다. 그는 도둑질 위해 우선 손보는 게 집지키는 개라고 했다. 도둑들은 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먹잇감을 던져주며, 말 듣지 않을 놈은 재갈을 물리거나 폭력을 행사해 죽여버린다. 바로 지금의 시국에, 언론게이트를 설명하는 데 딱 어울리는 비유이지 않은가? 공화국/헌법/주권을 도둑질한 3인조에 굴종한 똥개들, 말 듣지 않는 감시견들을 무력 진압한 3인조의 개장사꾼들. 이들의 색출이 바로 언론게이트 해체의 일이지 않은가?

이와 관련해, ‘기관 없는 신체’라는 꽤나 아카데믹한 구절을 상기토록 하자. 현학의 교설 앞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앙띠 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렇게 쉽게 정리했다. “<그것>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때로는 멈춤 없이, 때로는 중단되면서, <그것>은 숨쉬고, <그것>은 뜨거워지고, <그것>은 먹는다. <그것>은 똥을 누고 성교를 한다. 그것이라고 불러버린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어디서나 그것들은 기계들인데, 결코 은유적으로서가 아니다: 연결되고 연접해 있는 기계들의 기계들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가령 누군가 똥을 누고 그걸 똥개가 쩝쩝 먹어치우며 냄새 안 나도록 쓱쓱 청소차가 물질하는 시스템에, 제도에 ‘그것’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입 가진 자, 항문 지닌 인간을 포함하지만 반드시 그에 환원되지 않는 똥 싸기의 시스템이다. 사람은 기계적․시스템적으로 돌아가는 주변 비유기적 장치와 합체될 뿐이며, 사람인지 기관인지 구분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해진다. 그렇게 주체와 구조가 기계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에 두 정치철학자는 ‘기관 없는 신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박근혜-최순실-삼성 게이트를, 언론게이트를 설명하는데 딱 어울리는 표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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