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칼럼]

쟁점이 쟁점을 덮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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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금융공기업과 은행을 중심으로 구성된 금융산업노조를 시작으로 27일에는 철도노조와 지하철노조, 국민연금, 서울대병원 등이 함께하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가, 28일에는 보건의료노조가 공공금융부문 성과퇴출제 도입·확대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나섰다. 특히 22년만에 철도와 지하철이 함께 파업에 돌입하는 만큼 이를 준비하면서 시민들에게 파업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알리는 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여느 때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공공부문 성과주의를 알리는 기획기사도 실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의 파업지지 성명도 이어지고 있으며, SNS도 내 주변만 보면 파업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이 쟁점을 덮는 쟁점들이 너무나도 많아, 신문 1면을 뒤덮었던 사안도 하루 지나면 묻힐 지경이니, 성과퇴출제 철회를 요구하는 공공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잘 전달되지 않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로 몰아가는 정부의 대책만이 부각된다.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율이 높으면 높은 대로 국민 불편, 불법 파업임을 선동하고, 온갖 방해공작을 통해 파업 참여율을 낮추게 되면 내부 동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지지도 없다고 악선전을 해댄다. 어떻게 되든 파업은 절대 안 된단다.

8월초 대한민국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로 세상이 떠날듯 들썩였다. 당시에도 여러 사회적, 정치적 쟁점들이 있었지만,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로 인해 묻혔다. 이 쟁점을 다루는 수많은 토론회, 워크숍, 간담회 등이 잡혔고, 언론의 기획기사, 인터뷰 등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까지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고, 기나긴 8월 한 달이 지나면서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는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곧 내놓는다던 전기요금 누진제의 개선안은 아무런 소식이 없고, 8월 전기요금이 평소의 3-4배가 나왔다는 기사도 간간히 나오기는 했지만, 전기요금 원가 공개를 비롯한 핵심쟁점은 아무 것도 해소되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 "문제 해결 없이 쟁점만 반복되는 악순환의 굴레를 이제는 깨야 할 때"
▲ "문제 해결 없이 쟁점만 반복되는 악순환의 굴레를 이제는 깨야 할 때"

이 쟁점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북한 핵실험이 있었고, 이에 집권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일각에서도 핵무장론이 일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된 논란도 꾸준히 머리를 내밀면서 정권에 불리한 다른 쟁점이 불거질 때 이를 희석시키는 쟁점으로 활용되었다.

조선·해운업 부실화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연석 청문회(일명 서별관회의청문회)가 별다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종결된 것은 물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도로 진행된 제3차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청문회는 정부 측 증인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끝났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도 9월에 개최되었건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청문회에 참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사람이 다쳤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하고, 여당 국회의원은 국가공권력을 옹호하여 청문회를 개최한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하는 등 청문회가 오히려 책임회피와 거짓말의 장이 되었다. 그렇게 경찰 물대포에 맞아 300여 일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씨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검사 비리 사건은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뇌물 스캔들에 이어 정운호 법조비리, 홍만표 전 검사장 사건, 김형준 부장검사 스폰서 사건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게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사안임을 보여주었다. 엘리트 검사 출신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의혹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물론 이 사안들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은 국정감사에서 주요하게 다뤄진다지만 의혹이 해소될 지는 의문이다.

최근에는 ‘지진’이 핵심 쟁점이다. 지난 9월 12일 경북 경주에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연달아 발생한데 이어 일주일 후인 19일 규모 4.5의 여진이 비슷한 장소에서 발생했으며, 지진·여진이 400회를 넘어섰다. 정부·여당은 고위급 협의회를 열어 지진피해를 입은 경북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9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미흡한 지진 대책과 비현실적인 재난 대비 매뉴얼을 집중 추궁받자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그때그때 사고가 나거나 연구를 하고 대비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라고 답하여 빈축을 샀다. 재난문자 발송과 홈페이지 접속불가 사태 등에 대해선 통신사와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겼다. 국민안전을 책임져야 할 주무부처 장관이 이를 지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 국민안전처의 책임회피, 무능력은 이미 메르스 사태 때에도, 강남역,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때에도 입증된 바 있다. 재난관리에 대한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부처를 통폐합하여 설치된 국민안전처는 정작 메르스 사태를 맞이해서는 국민 안전을 책임지기는커녕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아니 300만 명쯤 감염되어야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며 뒷짐 지고 있기까지 하는 등 사실상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포기했다. 또한 연이어 터진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안전사고에서 그 핵심 원인이 ‘안전업무의 외주화’에 있음에도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외면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중대하고 심각한 쟁점들이 연이어 터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새로운 쟁점이 다른 쟁점을 덮는다. 문제는 그 와중에 어느 것 하나 해결되는 게 없으면서 ‘난리통’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가? 영화 같은 현실이 끊이지 않는 이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다. 문제 해결 없이 쟁점만 반복되는 악순환의 굴레를 이제는 깨야 할 때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야당이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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