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칼럼]

‘민중은 개·돼지’ 발언에 대한 분노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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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7월 13일 "민중은 개·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는 망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에 대해 파면 방침을 정하고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 상신키로 했다. “공무원으로서 부적절한 망언으로 국민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전체 공무원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켰다는 것이다. 나 전 국장의 발언이 공개된 지 4일 만에 전격적으로 취해진 조치이니 평소 정부의 행태로 봐서는 이례적일만큼 신속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 전 국장이나 교육부가 처음부터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시민들이 왜 이 발언에 분노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7월 9일 교육부는 보도자료에서 '취중 부적절 발언' 운운하면서 ‘개인적 일탈’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그러나 관련 기사마다 수천 개씩의 댓글이 달리고, SNS상에서 막말 파장이 커지면서,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준식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가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는 등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권 차원의 부담으로 커졌다고 판단하고, 더 이상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파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

파면 조치가 내렸다고 끝난 것일까. 공무원 징계문제를 다루는 인사혁신처가 파면 수준에서 감경해줄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논란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징계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소청심사에서 징계를 받은 공무원 10명 가운데 3~4명은 처분이 감경되거나 아예 취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년간 징계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된 행정소송에서도 30건 중 11건이 무효 또는 취소처리되었다. 나 전 국장 또한 악화된 여론으로 인해 파면 결정이 취해졌지만, 소청심사내지 행정소송을 통해 징계가 감면 또는 취소될 수 있다. 실제 사석에서의 발언만으로 파면이 된 전례는 없다. 앞으로도 언론과 시민들이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민중은 개, 돼지' 발언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TV화면 갈무리
▲ '민중은 개, 돼지' 발언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TV화면 갈무리

나 전 국장은 아마도 이번 파면 결정이 비합리적인 대중에 휘둘려서 나왔고, 자신이 억울하게 당했다고 느낄 것임에 틀림없다. 속으로는 ‘나만 그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비추어 보면 그리 별난 것도 아니다.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 한다”고 소신을 밝혀 물의를 일으켰고, 이정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은 워크숍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자들 집회 현장에 와서 술 마시고 행패부리다 항의를 받자 시민이라고 신분을 속인 서울 서초경찰서 정보과 경찰도 있고, 부산지역 학교전담경찰관들의 고교생과의 성관계도 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명백히 보도통제를 한 음성녹취가 공개되어 파문이 커지자 “통상적인 업무수행”이고, 그저 표현이 과했던 ‘말실수’라며 두둔하기도 했다. 나아가 금품수수·이권개입 등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으로 적발된 관료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이쯤 되면 “일부 몰지각한 공직자들의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치부하기 어렵다. 공직기강 해이 차원을 넘어 박근혜 정부의 집권 후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99% 민중’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대학구조개혁 등 교육부 주요 정책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핵심 보직에 있는 교육부 고위공직자가 자신들과는 다른 시대착오적인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99% 민중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인한 19세 하청노동자 김군의 죽음에 함께 아파하고 자발적인 헌화와 공감을 이어나갈 때, 나 전 국장은 이에 공감하는 것이 위선이라 했다.

나 전 국장만이 아니라 행정고시제도를 통해 정부 요직에 오른 관료들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공무원 임용제도만이 아니라 정부관료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1%의 사익을 공익과 보편적 이해로 포장하고, 99%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는 이 체제를 그대로 지켜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는 7월 13일 총리까지 참석한 감사관회의에서 공무원 비위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여 일벌백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인사혁신처는 지난 3월 국민에게 불편을 주거나 권익을 침해하고 국가재정에 손실을 가져오는 ‘소극행정’을 하는 공무원을 최악의 경우 퇴출시키는 ‘공무원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정작 임기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행태를 심화시키는 것은 바로 소극행정 운운하며 공무원들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만 하도록 만들고, 잘못된 인사, 솜방망이 처벌, 민관유착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자신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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