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모 칼럼] 기록이 미래다 (2)

몽타이유(Montaill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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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방앗간 주인을 대상으로 한 15세기의 기록 ‘치즈와 구더기’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13세기 초 농촌마을의 기록물 ‘몽타이유’가 있다. 치즈와 구더기가 시골 방앗간 주인 메네키오의 일생을 추적한 글이라면 몽타이유는 남프랑스에 위치한 작은 농촌마을의 기록이다.

1300년 초,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엄혹한 종교재판이 시작되었다.

로마교회는 1244년 십자군을 통해 카타르파의 보루인 몽세귀르성을 함락시켰다. 이곳은 당시 남프랑스 일대에 널리 퍼진 카타르파라는 기독교 종파의 본거지였다. 카타르파는 육체를 악으로 규정한 이단적 교리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삶을 부정함으로써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성이 함락되자 카타르파 신앙은 험준한 피레네 산맥으로 파고들었다.  해발 1천300m 고지에 자리한 한적한 농촌 마을 몽타이유를 카타르파가 점령한 것은 1290년 무렵이었다. 당시 몽타이유에는 전체 가구 수 50여호에 200~25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몽타이유가 속한 파미에 교구의 주교로 자크 푸르니에(후에 교황 베네딕투스 12세가 된 인물)는 1317년 부임해 1326년까지 일했다. 교구 주교 시절 푸르니에는 대대적인 이단 색출 작업을 벌였다. 그는 이미 이단자들에 대한 추적과 심문으로 명성을 날린 명 재판관이었다. 그는 고문 없는 심층 인터뷰 방식을 사용했는데 주민들이 자크 푸르니에의 예리한 심문을 빠져나갈 방도는 없었다.

3세대 프랑스 아날역사학을 대표하는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Emmanuel Le Roy Ladurie)는 이 방대한 심문기록에 주목했다. 1975년 르루아  라뒤르에 의해 ‘잃어버린 세계’는 다시 ‘살아 있는 벽화’로 복원(Montaillou, village dccitan de 1294 a 1324)되기에 이른다. 

몽타이유를 통해 당시 농민들의 일상은 고스란히 세상에 노출된다. 환경과 권력, 가옥, 지배가문, 양치기, 민속, 양치기들의 심성뿐 아니라 몸짓과 성행위, 결혼조건, 어린이 인식, 마을에서의 죽음, 사교구조, 사회관계, 자연과 운명에 대한 인식까지.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삶을 전 방위적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사실주의적 민중소설을 방불하는 민속보고서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진가를 밝히는 역자의 말은 이렇다. “지역, 국가, 서유럽 같은 넓은 범위가 아니라 한 마을이라는 작은 대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고, 더군다나 이 마을 농민들이 갖고 있던 민중문화의 독창성-교회 이데올로기 또는 교회 문화와는 다르다는 측면에서-을 보여주고 있다.

몽타이유가 처음 우리말로 번역(도서출판, 길) 되었을 때 언론은 ‘20세기 서양역사학의 최대 역작’이라는 말로 소개했으며 2006년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소개하는데 워낙 아는 사람들이 적어서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대안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몽타이유를 필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되는 것을 보면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어느 독자의 서평 중에 특히 기억에 오래 남아 상상력을 자극했던 대목이 있다.

“고구려의 어느 작은 마을 기록이 이처럼 세세하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아마도 싹쓸이 하듯 삶의 터전을 밀어 버리고 새로 쌓기를 거듭한 개발 탓에 기억 상실증에 신음하는 우리 도시와 마을들의 불행한 역사를 이대로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력에 시동을 걸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겐 이런 기록이 없다. 기록이 없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메워갈 뿐이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대장금이란 드라마가 그렇게 탄생했다고 들었다. 실록에 등장하는 한 줄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힌 드라마는 크게 성공했다. 세계 각국에 수출하여 호평을 받았고,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의 힘이라며 한 때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홍보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장금이라 하더라도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탄탄한 구성만으로는 빈곤한 우리의 역사적 공간을 채울 수는 없다.    

근래 들어 마을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며 작은 공간, 작은 일상, 작고 낮은 삶들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신문, 권력이 되지 않는 잡지, 밥이 되지 못하는 사진에 기꺼이 한 몸 바치자는 의미는 무엇인가. 구술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한층 높아가고 있다. 누가 하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마을과 마을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민중들의 삶은 더 많이 기록되어야 한다. 궁극에는 그들이 우리 역사를 더욱 부유하게 할 것이다. 그들에게 복이 있을진저!

/정흥모 이야기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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