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서신⑨]정치권에 입문하는 여성 활동가에게 보내는 응원

진보정치운동으로 나서는 나의 아름다운 동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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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미디어운동장에 발을 들여, 그 동안 문화연대와 공공미디어연구소를 거쳤다. 이제는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직을 수년째 맡고 있는데, 돌아보니 제법 긴 기간이구나. 꽤 일이 많았던 시간이다. 그 동안 여러 활동가들을 겪었다. 부덕의 소치로 재미없이 헤어진 드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열 없는 동무로서 함께 움직이고 또한 동지로서 뜻을 이루려는 관계였다.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사이였다.

진보적 미디어 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문화연대에 참여했을 때부터 함께 한 내 운동의 선배 형진은 어느덧 엄마가 되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앳된 얼굴의 처녀는 이제 한 어미로서, 그리고 맞벌이 하는 한 직장인으로서 생활의 전선에서 바쁘다. 저널리스트로서 언론운동 현장을 좇는 남편과 동거 중이다. 그러면서 잘하라는 응원,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격려의 메시지로 현장에 남은 선생에게 인사한다. 관계는 그렇게 이어진다.

그녀 뒤를 이어 문화연대에서 죄파 미디어운동의 선을 꾸렸던 더 어린 나이의 순택이 있었다. 부안과 평택, 광화문에서, 그 외 모든 투쟁과 연대의 현장에서 함께 싸웠던 활동가다. 몸으로 권력에 부딪히고 말로 정권에 맞서며, 의식으로 시대를 목도한 동료다. 그녀도 이제는 다른 활동공간으로 떠났다. 아니, 여전히 이웃에서 현장을 함께 한다. 미디어 비평지 기자가 되어, 절망과 환멸, 참담과 폭력의 언론계를 필설로 파고든다.

그 외에도 기억해야 할 얼굴들이 많다. 남도로 내려가 새로이 지역미디어운동을 고민하던 친구, 국회 보좌관으로 변신해 민주정치를 지켜내고자 분투 중인 친구, 학교로 돌아가서 못다 한 공부를 마치려는 친구, 이제는 사업체를 일궈 소홀히 한 가족생계에 전념코자 하는 친구, 그리고 정치평론가가 되어 온갖 채널을 오가며 좌충우돌 진보의 대항담론 유포에 여념 없는 친구. 모두들 많은 고민을 갖고 낯선 지경에서 새로운 미래를 힘겹게 모색 중이다.

이렇게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자본국가가 지배하는 이 야만의 상황에서,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한 가운데도, 묵묵히 활동의 시간을 지켜왔고 이제는 또 다른 활동의 공간을 찾아 떠난 훨씬 많은 사람들을 언제나 동지로 기억해고 싶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건, 심지어 무명의 시민으로 일상으로 귀환했건, 그때처럼 지금도 치열하게 현실과 교전 중일 게 틀림없는 이들을 문득 거명하고 싶은 것이다.

내 곁을 떠난 또 한명의 동지에게도 정확하게 그렇게 하고 싶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보내줘야 하는 친구다. 언론연대 사무총장을 맡아 왔던, 정책위원장까지도 지냈던 혜선이다. 언론학자와 미디어연구자들조차 등 돌려버린 이 야만의 현장에서 온갖 운동의 담론을 생산해내야 했던 지식인 활동가다. 정권과 자본이 장악해버린 이 참담의 미디어운동장에, 공포와 무기력이 똬리를 튼 이 불구의 언론운동권에 남은 몇 안 되는 선수 중 에이스다.

그녀는 허약한 체력의 소지자다. 늘 골골 거린다. 두 명의 딸을 보살펴야 하는 나이 제법 든 어미로서, 어찌 일상의 삶 자체가 고단하지 않겠나. 가끔은 며칠째 병석에 있어야 하기도 했던 그녀다. 그렇기에 누구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의지를 갖고 분투해 온 강단의 소지자가 바로 그녀다. 표현 다 못할 노고로써 운동의 터를 다졌고 운동의 장을 지켜왔으며, 마침내 미디어운동장의 총 실무 책임자로 우뚝 선 언니다.

미디어공공성을 지켜내고 표현의 자유를 보수하며 진보정치를 실현코자 함께 분주했던 현장 활동가. 종편과 조중동의 거짓이 난무하고, 그와 진배없는 공영방송이 허위를 유포할 때, 전설의 저널리스트가 목이 잘려 나가고 대중의 교통주권이 진압되어 갈 때, 바로 그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을 함께 지켜보았던 시민사회 운동가. 적대와 냉소의 벽을 뚫고 진상과 진실을 전하고자 맹렬히 저항한 실천적 지식인.

그런 친구가 정치의 공간으로 자리를 옮기고자 했다. 정의당으로 가 언론개혁기획단장이 되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이 대책 없는 선배에게 자문을 구했다. 별것 없는 대표의 허락을 구한 것이다. 당신이라면 대체 어찌할 텐가?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인가? 활동가가 사실상 고갈되는 이 현장에 남아, 계속해서 운동을 책임지자고 말렸을 것인가? 쉽지 않을 텐 데 왜 그런 힘든 선택을 하려느냐고 야단칠 건가?

아니면, 잘 되었다고, 좋은 기회라고 축하할 것인가? 활동가의 곤란한 현재적 삶과 결코 밝지 않은 미래 전망을 대충은 아는 대표다. 결국, 깊은 생각 끝에 판단했을 그녀에게 생각대로 해봐라 말할 수밖에 없는 선배다. 실제로는, 고민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녀는 과연 만만찮은 정치의 무대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 같은 의미 있는 운동의 성과를 내고 생환할 수 있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는 과연 그녀와 같은 시민사회 활동가가 여전히 관심 갖고 참여할 의미 큰 무대이며 가치 있는 영역인가? 무력화된 대의의 공간에서 오직 그녀만이 실행할 특정한 내용물은 무언가? 왜 그녀가 지금 정치권으로 움직여야 하나? 무엇으로 진보정치를 구현하며, 어떠한 진보정치로써 민의를 항변할 것인가? 어떻게 체제에 반역하고, 질서에 저항할 것이며, 어찌 지옥보다는 그대로 나은 미래를 가능케 할 것인가?

어떻게 시민사회의 남은 동료들과 협력할 텐가? 사실 시민사회 활동가가 정치를 하겠다며 정당으로 간 건 새삼스러운 일이 전혀 아니다. 어제의 긴 필리버스터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진보적 활동가 의원의 선례도 있다. 왜 또 그녀여야 하는가? 그녀는 진보정당 내에도 틀림없이 강고해져 있을 계파의 구태까지 어떻게 쇄신․돌파할 수 있을까? 소중한 활동가를 떠나보낸 대표는 이런 질문으로 그녀를 계속 추궁하는 것 외에 뾰족이 할 일이 없다.

부디 이런 선배의 채찍질로 더욱 스스로를 연마하여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진정한 진보정치가가 되길 바랄 뿐이다. 제발 멸망의 한국 민주주의와 위기의 한국 진보정치를 구제할, 노동자 대중과 고통 받는 모든 소수자시민들과 연대하는 진심의 전보정치 활동가가 되길. 검열과 선전에 맞서고 국가와 자본에 저항하며 폭력과 권력을 고발하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주권을 위해 당차게 나서는 정치권 안의 진정한 시민 대변자로 남길.

이것이 새 길 떠난 동지 혜선에게 보내는, 남아 현장을 지킬 주변의 활동가들이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응원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파이팅! 마지막으로, 이 글 읽는 독자들도 저 용감한 아줌마 활동가/정치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하는 바이다. 혹 이런 부탁이 지극히 편파적인 사견처럼 들릴지라도, 나는 그게 오랫동안 현장을 지켰다가 또 다른 현장으로 나서는 저 아름다운 동지가 당연히 받아야 작은 보답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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