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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 마당 한 가운데 ‘탱자나무 가시’가 주는 교훈[바람따라 구름따라] 문경 장수황씨 사정공파 종택
최윤환 현장기자  |  ds5zu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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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22  11: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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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새해가 됐다. 세월이 빠른 건지 하루하루가 번개처럼, 바람처럼 지나가는 건지, 눈뜨면 아침이고 어느새 한 밤중이 된다. 정신없이 흘러간다. 한 때는 객기를 부리듯 호방함을 흉내 내던 젊음 시절이 있었다.

‘만주 산학회’를 만들어 호사가처럼 한량처럼 멋 부리던 시절이었다. 만주는 일만만(萬) 쇠 부어 만들 주(鑄)이니 회비는 만원이고, 찰만(滿) 술주(酒)이니 이는 산에 올라가서 마음을 비우고 내려와서 술로 채운다는 말로 그때 산학회 날 이면 밤새워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게으를 만(慢) 걸을 주(走)로 천천히 가더라도 “정상까지 간다” 이다. 이때 예사로 산을 가는 사람들도 세시간정도면 완주할 곳을 우린 하루를 꼬박 보냈다. 마지막 만주는 지금은 안동 인근의 산이지만 통일이 되면 백두대간을 따라 만주까지 간다는 뜻이며, 산악회가 아니라, 산학회(山學會)는 산에서 배운다는 뜻으로 건방을 떨었다.

만주산학회란 이름을 지은 친구는 시인이었고, 들풀이라는 호를 쓰는 야생화 전문가와 봉산(捀山)은 풍수를 하는 친구였다. 산행중 묘지가 나오면 풍수가 말하고, 비석은 한문 공부하는 친구가 읽어주고, 진경산수화를 하는 친구는 사생을 하는 나름 멋진 조합으로 어쭙잖게 호기를 부렸다.

그때 처음 대한 것이 호산춘(湖山春)이었다. 맥주, 소주, 이강주, 심지어는 산 정상에서 마시는 술은 정상주, 내려와서 마시면 하산주 인데, 유독 춘이라 다들 술이 아니고, 음료수이거나 홍삼진액 같은 건강식품일 것이라고 지례 짐작했다.

추억이란 늘 새롭고 아련하다. 그날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경북 문경 호산춘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술 이름으로는 보통 ‘주(酒)’자가 붙지만, 당나라에서는 ‘맛과 색, 향이 특별히 좋은 고급술에 ‘춘’자를 붙여 ‘춘주(春酒)’로 분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춘’자가 붙은 술로 호산춘과 함께 약산춘(서울), 벽향춘(평양)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호산춘(경북무형문화재 제18호) 밖에 없다고 한다.

   
▲ 도촌유거 현판이 걸린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 사랑채

호산춘은 황정이 조선 초기에 문경 한두리에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가양주로 빚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정은 세종때 영의정만 18년 한 방촌 황희(1363~1452)의 증손자다. 호산춘(湖山春)은 지금도 황희 정승의 생일인 음력 2월10일이면, 사당인 숙청사에서 다례(茶禮) 행사 때 올리고, 대대로 제주로 사용해 왔다고 한다.

한두리는 서애 류성룡과 한강 정구의 제자로, 삼가현감을 지낸 황정의 고손자인 칠봉(七峰) 황시간(1558~1642)이 낙향해 사정공파 종택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면서부터 ‘학덕 높은 선비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도촌(道村) 또는 대도촌(大道村)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큰도촌’이라 하다가 ‘한도리’로 변하고, 다시 ‘한두리’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사정공파 종택 사랑채 처마에 걸린 ‘도촌유거(道村幽居)’라는 전서체 편액만 보더라도 이집안의 가풍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장수황씨 사정공파는 황희 정승의 맏이 집안은 아니지만, 현재 장수 황씨의 종택을 유지하고 있는 가문은 이 사정공파가 유일하다고 한다. 사당인 숙청사와 사랑채, 안채, 고방채, 문간채, 우물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 역사가 200여 년에 불과한데,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유품을 지키면서 400여 년을 한자리에서 유업을 잇고자 하는 종택의 모습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종택 방문은 조심스럽다. 옷차림에서부터 몸가짐, 말씨, 신경 쓰이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 길 가볍게 가자, 그냥 종가에서 빚어내는 호산춘 한병 사러 간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마음은 무겁다. 종손에게 통성명을 하자, 호산춘을 빚는 집안 양조장에서 일하다 나온 차종손이 츄리닝 바람이라고 대뜸 호통이다.

이래서 종손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는가 보다” 종손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지고 많은 제약이 따른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같이 마음 놓고 놀 수도 없고, 도회지로 가서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 언젠간 종손이 되어 종택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봉제사 접빈객은 기본적 의무이고, 자신을 희생하고 고향과 종택을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사랑채 대청마루에 줄 대신 마루 계단을 만든 경로와 겸손을 갖춘 실용적마루

종택 사랑채 대청 섬돌위에는 줄이 달려있는데 이는 종손이 대청에서 신발을 신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함이라하여 양반이나 종손의 권위를 나타낸 TV프로를 본적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집안은 엄청난 교만이고, 권위적이다. 무릇 한옥의 문이 작은 이유는 자신을 낮추기 위한 겸손이라는 미덕을 지닌 장치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것이 유학적 이념이다.

사정공파 종택 대청 섬돌위에 줄을 달지 않고 대청마루를 한단을 더 만들어 자연스럽게 높은 대청을 오르내리기 편리하게 만들어놓았다. 이 역시 겸손이고 어른을 위한 공경이다.

사당인 숙청사 앞에는 특이한 모습으로 자라난 탱자나무를 볼 수 있다. 대개의 탱자나무는 울타리로 심어지는 것과는 다르게 마당 한 가운데 그것도 사당 앞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다. 종택의 상징인 경상북도 기념물 제135호 400여 년 된 탱자나무다. 우리 선조들은 의미 없이 장난삼아 허투로 멋 부린 다고 하는 일은 없다.

나무하나를 심어도 철학적 의미와 자연관을 담아 놓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탱자나무 앞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적 의미이고 비방이다. 산(山)은 용(龍)이고, 용은 수신(水神)으로 물을 다스리고 물이 있어야 권능이 발휘된다. 배산임수로 지은 종택은 용이 머물고 놀게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연못이다. 용이 머물고 있는 한 이집안의 영화와 부귀가 자자손손 이어지라는 염원이다.

   
▲ 사당앞 마당에 있는 400여년 된 탱자 나무

탱자나무는 두 가지 의미이다. 마당 한가운데 돌을 놓아 용을 멈추게 하는 것 보다는 가시가 삼엄한 탱자나무로 묶어두어 연못에서 놀게 하는 요석(腰石)의 의미이며, 또 하나는 후손들에 대한 경계이다. 사당 앞에서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소란스럽게 놀지 못하게 하여 조상을 안식하고자 함이요, 후손들이 자신에게 엄격하게 지켜야 할 본분에 충실 하라는 교훈이다. 탱자나무 말이 추억이고 추상이니, 뿌리를 잊지 말고 조상들의 유업을 계승하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니 더욱 탱자나무를 심은 뜻이 우뚝하다.

이제 설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설날이 되면 피붙이 형제자매들이 모두 부모님과 같이 차례를 올리고 세배를 드린다. 어느 집안이고 종교와 정치문제는 금기시하자고 한다. 좋은날 정치와 종교이야기로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이지만, 속된 말로 “정치가 밥 먹여 주나?” “돈 안 되는 정치이야기는 안한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 정치는 밥이고, 정치는 돈이다. 입법과정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고, 우리들 세금과 관련 없는 것이 어디 있는가?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무지한 지도자에게 지배받을 수  밖에 없고, 국민의 수준이 지도자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 설날 와인과 양주는 멀리하고 전통주를 들고 차례를 올리고, 새해 아침은 즐겁게 올바른 선량을 뽑는데 일조하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새해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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