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의 본질

직업공무원제 폐지·공공부문 기업화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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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인사혁신처가 입법예고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은 동법의 목적까지 변경하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 공무원 임용과 보수 그리고 승진 등 공무원 복무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불과 20일에 지나지 않았다. 행정절차법이 규정한 통상의 입법예고 기간 40일을 어기면서까지 이 중대한 법규의 개정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전 공청회나 토론회도 없었고, 법 개정 전 정당성 확보를 위해 흔히 곁들이는 연구 용역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정부 제출 입법이니 앞으로 국회상임위를 거치면서 낱낱이 검증되고 분석되기를 바라지만, 최근 정부와 집권당의 태도로 보아서는 이른바 ‘공직개혁’이라는 명분을 덧씌워 밀어붙이려 시도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개정안의 어떤 내용들이 문제인지 살펴보자.

‘공직가치’ 개념 포괄적, 국가주의 용어 ‘애국심’ 강화… 공무원 사상검증 일상화 노려

첫째, 국가공무원법의 목적을 ‘공직의 경쟁력을 높이고’, ‘공직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바꾸려고 한다. 공직가치란 ‘애국심, 민주성, 청렴성, 도덕성, 책임성, 투명성, 공정성, 공익성, 다양성 등’을 말한다(개정안 제5조). 공직가치는 바로 공무원이 준수해야 할 의무 사항이 된다(개정안 제55조의2). ‘공직가치’ 또는 ‘애국심’은 헌법이나 형법 등 한국의 어느 법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용어이다.

공직가치라는 개념이 포괄적이어서 규율로서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애국심과 같은 국가주의적 용어를 민주국가의 공무원법에 적시한다는 자체가 퇴행이다. 애국심 강화라는 명목으로 2015년 각종 공무원 시험 면접에서 벌어졌던 노골적인 국가관 검증, 사상검증의 행태가 앞으로 공직사회 전반에 일상화될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발주한 용역은 ‘공직가치별 행동준칙’에서 <애국심> 항목의 행동 지침을 다음과 같이 예시한다. <표 참조>

 
 

둘째, 직무성과와 역량평가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근무성적 평정’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대신 ‘성과평가’가 들어왔다. 성과평가 결과 우수자는 승진, 특별승진, 특별승급, 상여금 지급 등 각조 우대 조치를 하게 된다. 성과 미흡자에 대해서는 ‘역량 및 성과 향상 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개정안 51조 등). 공직의 직무성과는 그 개념이 확정된 것도 아니며, 동의를 얻는 측정 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량 중심 인사’ 역시 논리적으로 정리된 개념이 아니다. 1990년대 민간기업들에서 노동통제의 방법으로 유행했던 근거 박약한 경영이론일 뿐이다.

셋째, 보수 결정의 기준에 성과평가 등을 반영하겠다고 한다(개정안 제46조). 보수는 봉급과 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과수당을 넘어서 보수 자체에 성과평가를 반영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모든 직급에 연봉제와 같은 불안정 급여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과는 개별 공무원의 힘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성과평가는 정책평가의 일부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효과적인 정책 체계 구성을 위해 정책 과정을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기 위해서 실시되는 것이다. 조직적으로 일하는 공무원 집단에서 개별 공무원의 성과의 우열을 가리고, 그에 따라 보수 자체를 차별화하겠다는 것은 관료제의 가동 원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보수 체계를 임의로 공무원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변경하는 것 자체가 불법적 발상이다.

넷째, 보직관리와 승진임용의 원칙을 사람에서 직무와 역량 중심으로 변경하겠다고 한다(개정안 32조의5). ‘공무원의 전공, 훈련, 근무경력, 전문성, 적성 등을 고려하여 적격한 직위’를 찾아주던 보직 기준을 ‘임용예정 직위의 직무 수행 요건을 고려하여’ 그에 적합한 공무원을 임용한다는 것으로 바꾸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케 하려면 임용예정 직위의 모든 직무 특성과 자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기능적 업무 이외에 공직에 대한 어떤 직무분석도 이에 성공한 적이 없다. 이 규정은 일반 행정가로 임용된 보통 공무원 노동자들을 압박하여, 신구 경력자들의 갈등을 야기하고, 장기 복무자들을 위협할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저성과자 직위해제 절차 신설, 전체 공무원 인권침해 우려

다섯째, 승진임용의 근거에서 경력평정이 사라졌다(개정안 제40조). ‘근무성적평정, 경력평정, 그 밖의 능력의 실증에 따르는’ 승진임용의 근거를 ‘직무성과와 임용예정직급, 직급 또는 직위에서 요구하는 역량, 자격, 경력 등에 대한 심사 또는 시험’을 통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직무성과와 역량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인데, ‘역량 평가’ 자체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자의적 개념이다. 개정안대로라면 근무성적평정과 경력평정이 없어지니, 오랫동안 묵묵히 일해온 공무원보다는, 대신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직무성과를 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심사 및 평가를 통과할만한 임기응변식 대응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우대받을 것이다.

여섯째, 저성과자의 직위해제 절차를 신설했다(개정안 73조의3). ‘직무수행 역량이 부족하거나 직무성과가 극히 나쁜 자’로 평가받은 경우 신설되는 성과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 직위해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전에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나쁜 자’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전에 조항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능력과 근무 성적은 장기간의 실증과 관찰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직업공무원인 노동자를 자의적인 평가로 직위해제할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개정안은 직무의 기준을 먼저 설정하고 그에 미달하는 공무원을 평가한다는 것이므로 해당 기관의 정책에 따라 성과심사를 받을 공무원이 양산될 수도 있다. 이렇게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공무원은 성과향상 교육 등의 절차를 거친다고 하나, 사실상 강제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 과거 서울시와 울산시 등에서 실시되었던 공무원 퇴출제가 비리공무원과 저성과자 퇴출이라는 명목을 내걸었으나 공무원 노동자 전체에 대한 대대적 인권 침해 행위였음을 기억한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내몰리는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행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곱째, 인사혁신처의 권한이 커진다(개정안 제6조 제5항). 개정안에 따르면 인사혁신처장이 각 행정기관의 인사운영에 대한 진단, 평가, 지도, 개선권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기관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따르고 결과를 통보해야 할 의무를 진다.

▲ 이근면 인사혁신처장과 황서종 차장이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사혁신처에 대한 국정감사 시작에 앞서 논의하고 있다. /뉴스1ⓒ
▲ 이근면 인사혁신처장과 황서종 차장이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사혁신처에 대한 국정감사 시작에 앞서 논의하고 있다. /뉴스1ⓒ

공무원 인사관리에서 각 부처별 특성에 맞는 자율성을 행사할 여지를 박탈하고, 인사혁신처를 기관 위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사혁신처의 권한에 대하여 견제하고 통제할 방법은 없다. 인사혁신처는 독임제 기관이므로, 인사혁신처장 개인의 성향에 따라 국가공무원 인사방침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 공무원 인사정책은 처장의 출신 배경, 정치적 의지와 기업가적 사고에 따라서가 아니라 민주적 국가운영과 직업공무원 노동자의 일생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여덟째, 개정안은 이와 같이 직업공무원제를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성과주의를 확대시키는 방안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공무원 노동자의 권리 확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일본, 독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여러 주에서 금지하지 않고 있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하게 차단되고 있다. 시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공무원의 노동조합 활동 등의 근거를 국가공무원법에 담을 생각은 없는 듯하다. 반면 공무원의 임용근거를 정비하고(개정안 제26조의 2), 지역인재 추천채용자의 수습기간을 최대 3년으로 연장하는 등 공공 부문의 불안정 노동 강화 방안은 강화되고 있다.

직무성과 평가로 노동통제… 보수결정에도 반영, 불안정한 급여체계로 전환

박근혜 정부 인사혁신처가 출범한지 1년이 넘었다. 인사혁신처는 “해피아, 관피아라는 신조어들이 양산되면서 공무원들의 행태와 관행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공무원들의 인사를 책임지는 분야의 변화와 혁신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므로 이 조직의 첫 번째 사명은 공무원과 특수 사익 집단들의 결탁을 막고, 공무원들이 정권과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의 수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인사혁신처에 부여된 임무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인사혁신처는 공직가치라 하여 ‘애국심’을 강조하고, 이른바 ‘직무성과와 역량’으로 포장된 개별 공무원의 ‘경쟁력’ 확보 방안에만 초점을 두는 국가공무원 개정안을 성과로 내놓았다. 개인별 성과를 강조하고 현실 권력의 향방만 바라보며,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의 성취만 추구하는 공직자를 우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 인사혁신처는 올해 내내 공무원 성과평가에 있어 최하위 등급 10%를 강제한다거나(공무원성과평가등에 대한 규정 개정령안), 민간근무휴직 대상기업에 재벌 기업을 포함시켜(공무원임용령) 관경유착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오고 있었다.

12월 8일에는 성과연봉제를 5급까지 확대하는 한편 성과급 비중을 대폭 높이는 ‘직무와 성과 중심의 공무원 보수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그동안 시행령을 통하여 법을 초월하여 전개되었던 인사행정의 마지막 결과물이다. ‘성과주의’의 확산을 통하여 직업공무원제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모든 공공부문을 시장화, 기업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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