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칼럼] 법과 상식 <1>

입증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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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법에 입증책임이라는 개념이 있다. 입증책임은 증명책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 소송상 어느 요증 사실의 존부가 확정되지 않을 때 당해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어 법률 판단을 받게 되는 당사자 일방의 위험 또는 불이익’으로 정의되어 있다. 법률 용어라 다소 어려운 감이 있으나 좀 쉽게 설명하면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증명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형사소송법에는 이와 비슷한 ‘거증책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거증책임은 ‘요증 사실의 존부에 대하여 증명이 불충분한 경우에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의 법적 지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고, 형사법상 공소범죄사실에 대한 거증책임은 검사가 진다. 즉, 쉽게 말하면 검사가 피고인의 잘못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무죄가 된다는 말이다.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다. 이 사건은 ‘혼외자 문제’를 빌미로 한 ‘검찰중립성의 침해’가 명백하므로 기본적으로 이를 ‘혼외자 문제로’규정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를 ‘혼외자 문제’로 한정해서 본다하더라도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언론의 주장은 기본적인 증명책임과 거증책임분배의 원칙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채검찰총장이 혼외자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이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하여야하는 것이다. 즉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상식을 깨고 이 언론은 채총장 스스로 혼외자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채총장이 ‘혼외자’가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한다는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에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채총장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강제적 수단은 없다. 의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유전자검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언론을 상대방으로 한 민사소송이나, 법무부의 감찰을 통하더라도 당사자인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다. 혹자는 임여인을 형사고소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여인의 행위는 형사처벌을 받을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형사고소를 억지로 한다하더라도 아이에게 유전자 검사를 시킬 수 있는 강제적 방법이 없고, 아이 역시 유전자 검사에 응할 의무가 없다. 즉, 임여인을 비롯한 아이의 자발적 협조 없이 채총장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입증책임분배의 원칙에 의하면 채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주장한 언론이 채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여야한다. 그러나 언론을 상대로 한 정정보도청구를 제기하면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허위보도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자가 원칙이므로 얼핏보면 채총장이 언론보도가 허위라는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언론은 일단 저질러 놓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본 건과 유사한 사례에서 최근 대법원은“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의 증명에 관한 것이라면 이는 사회통념상 불가능에 가까운 반면 그 사실이 존재한다고 주장, 증명하는 것이 보다 용이한 것이어서 이러한 사정은 그 증명책임을 다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돼야한다”고 판단하고 이어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피해자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의 입증을 할 수 있다"라고 하여 정정보도청구소송에서의 입증책임을 전환하고 있다.

채동욱 총장의 경우는 본 판례가 적용되는 사안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반 상식에 의해서는 물론 법률적으로도 채총장이 혼외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문제를 제기한 언론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언론 및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채동욱총장의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도 못해놓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채동욱총장이 혼외자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라고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채총장의 혼외자 의혹 문제는 이미 10년도 더 전인 2002년에 발생한 문제라서 검사징계법상 징계시효인 3년도 경과하였다. 즉, 감찰을 하더라도 징계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범죄수사도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수사를 계속할수 없는데 감찰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법무부는 입증을 할수도 없고, 입증을 하더라도 징계라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상을 밝힐 수도 없겠지만 혼외자가 있다는 것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야할 문제이냐하는 문제는 오히려 논외로 하자. 직무와 관련하여 뇌물등을 받은 것이 아닌 사적인 영역이고, 게다가 당사자들이 인정하지도 않고 있고, 증명된 사실도 아닌 마당에 마치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 배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는 댓글이나 달고 있고, 국정원댓글녀 사건을 이야기하니 갑자기 당치도 않은 여성인권을 이야기하고, 대선 직전에 국가기관인 경찰이 수사도 하지 않고 댓글이 없다고 발표하고, 국정원대선개입이 문제되니 바로 NLL 대화록을 이야기하고, 통상적인 국보법 사건 정도를 내란음모로 뻥튀기하고, 원칙대로 수사해보려고 하니 마음에 안든다고 이상한 뒷조사를 해서 총장까지 날리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기본적인 상식, 인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쉽게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김남준 법무법인 ‘시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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