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한국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서비스확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선결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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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무상급식 시행여부를 논란 벌이면서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분단과 전쟁을 거치고 군사독재에 의하여 지나친 우경화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뒤늦게나마 복지국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상황이 그만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우리사회의 경제구조가 일반 서민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금의 시기는 복지국가를 통한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명제의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하는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스웨덴을 비롯한 서구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일부의 복지정책들이 뒤늦게 시행되었으며, 그것도 매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작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가 겪어야 했던 굴곡의 역사가 한계로 작동하고 있고, 오랜 기간 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행해진 사상의 왜곡현상은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구성원들이 서구적 복지국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없도록 작동되어온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구 여러 나라의 경험과 장단점을 분석하고 참조 할 수 있는 후발주자로서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른 조건으로는 세계 경제가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과거 선진 복지국가들이 전후 경제호황기에 누렸던 사회경제적 여건보다는 매우 불리한 객관적 조건 속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 급격한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 기간 동안에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의식을 갖출 수 있었고, 이것이 노조조직률로 이어지고,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사민주의 정당인 사민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됐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5~60년대의 포디즘 체제 속에서 산업 간의 노동의 종류와 내용이 비슷했던 체제와 지금처럼 다양한 체제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정보산업사회로의 변화는 매우 다른 조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스웨덴 모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코프라티즘과 렌-마이드너 모델이 산업의현대화와 함께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복지 국가논의는 복지국가 체제로의 전환을 매우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이후 사상의 극단적 편중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산업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노동의식이 발전할 수 없었고 더욱이 군사정부의 영향으로 이념적 편향이 매우 극심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영향으로 우리사회의 노동의식은 매우 천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우리사회는 이미 매우 고도화된 정보산업사회로 진입하여 산업별, 기업별 노동의 내용과 질이 다르기 때문에 코프라티즘적 사회적 대타협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물론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재벌기업들이 산별노조의 형태에 따라 동일직종 동일임금의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임 것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양극화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발전도 도모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복지국가를 향한 다양한 방식의 도전과 내용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점은 복지국가는 단지 몇 가지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중장기적 계획을 마련하고 이 단계에 맞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함께 배치해야 하는 것이고, 사회적 패러다임 역시 이 단계별 상황에 맞도록 변화되어야 스웨덴 모델 같은 매우 훌륭한 복지국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복지국가라는 경제적 민주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리사회에 맞는 몇 가지 단계별 전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우선 복지개혁 초기에는 탈세방지와 불필요한 예산삭감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한 재원확보를 중심으로 하고, 일부 추가적 증세를 바탕으로 복지정책을 추구한다. 이 시기의 정책적 기조는 화이트칼라, 상층 자영업자, 노동자 상층 등도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프로그램 (영유아 보육, 간병, 무상교육, 무상의료, 아동수당 등)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노동자하층,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에 대한 조세 기반적 복지프로그램 (사회보험에서 이들에 대한 보험료의 국가보조 등)을 실시한다. 이 단계에서는 실업부조의 도입, 공공부조의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일정수준의 복지동맹을 구축하기도 전에 복지개혁에 대한 저항, 복지개혁의 ‘피로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화이트칼라 등 경제적 중간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사회연대전략은 특히 탈세와 예산삭감에 대한 강한 정책적 의지를 보이면서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 단계의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확대와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이다. 여기서 동맹세력의 구성은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의 하위계층과 정규직 노동자 등 중간계층, 그리고 여성이 될 것이다. 한편 노동연대와 관련해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내실화, 고용안정을 위한 ‘거시적 대화’의 정착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앞의 단계의 개혁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보험내의 개혁, 예를 들어 기초연금 급여율의 상향조정, 기업 간 사회보험 부담의 형평성 제고 등을 추진하는 한편, 실업부조의 도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또 동시에 경제부문간의 이전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해야만 한다. 즉 세계화와 FTA 등에서의 ‘얻는 자’와 ‘잃는 자’간의 사회적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얻는’ 부문에서의 초과이윤 일부의 ‘공적 기금화’ 등을 정책적 우선순위로 내세워야 한다. 여기서 동맹의 주축은 하위계층과 중간계층, 농민, 실업자 그리고 일부 기업주가 될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전면 확대하고.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더욱 가속화하면서 복지개혁을 완성한다. 이 단계에서는 누진적 조세가 더욱 강화되고, 이를 통해 충분한 복지재정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서 사회보험 내에서의 수직적 재분배는 굳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노동연대 차원에서는 그간의 고용안정을 기반으로 한 임금동맹이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소득연대 차원에서는 사회보험의 조세 기반적 성격 강화, 공적 부조의 전면적 확대가 실시되고, 나아가 보편적 사회서비스가 완비되면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회보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대대적인 공적 부조의 확대를 꾀한다 할지라도 큰 저항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앞의 개혁들(보편적 사회서비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실업부조 등)을 통해 공적 부조의 대상자가 대폭 줄어들 것이며, 또 복지 지지 세력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복지동맹의 완성단계로서 하위계층, 중간계층, 여성, 실업자, 노인, 장애인 등이 국가복지의 강력한 지지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복지국가 논의가 갖는 함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진보정치세력에게는 그동안 굳게 닫쳐있던 새로운 문이 하나 열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진보정치세력은 너무 의욕만을 앞세우거나 또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광풍의 역작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복지국가 논의의 장을 제대로 활용하고 계급적 ․ 계층적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 마련에 주력해야 할 시기이다. 아울러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사회가 복지국가로 안정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원 ․ 하청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바로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이며,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없이 복지국가의 진입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정한 조세제도의 문제도 간과 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공정한 조세의 원칙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조세저항에 직면할 수 없게 되므로 복지국가를 향한 단계적 진입 또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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