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크바’는 75년째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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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10월 11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터지면서 중동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동’ 하면 ‘전쟁’이 떠오를 정도로 불안정한 지역이며,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언제든지 폭발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기에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린다. 중동 정세의 불안정과 전쟁의 화근은 무엇일까?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감행했다. 하마스가 ‘알-아크사 폭풍’이라고 칭한 대규모 작전이었다. 언론에서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스라엘이 아무런 도발도 안 했는데, 하마스가 선제공격을 가해 충돌이 벌어졌고 양측에서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말인가? 미국과 서방 언론의 주류 언론들은 마치 그런 것처럼 보도한다. 과연 그런가?

이스라엘과 서방 쪽 주장과 달리 하마스의 공세는 선제공격도 예상 밖의 일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올해 9월 말까지 이스라엘군과 유대 정착민(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한 유대인)에게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모두 230명에 이른다. 2022년 한 해 희생자 204명을 뛰어넘은 수치이자,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군한 이래 최대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을까?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며, 남쪽으론 이집트와 짧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좁은 지역이며 면적은 약 365㎢로 세종시(465㎢)보다 조금 작다. 약 220만 명이 거주하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다.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어 이스라엘 정부 발급 통행증 없이는 출입이 불가하고, 수도·전기·식량의 유입도 통제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창살 없는 감옥’으로 알려진 좁은 땅 안에 갇힌 가자지구 주민들은 17년째 잔혹한 봉쇄를 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철저히 봉쇄한 상태에서 수시로 군사공격을 감행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했다. 대표적인 군사공격 작전을 보자. 이스라엘 인권단체 ‘점령지인권정보센터’(베첼렘)의 자료를 보면, 2008년 12월 27일부터 22일간 이어진 작전명 ‘케스트 리드’로 가자 주민 1391명이 숨졌다. (759명은 민간인, 318명은 18살 이하) 2012년 11월 ‘필라 오브 디펜스’(167명 사망), 2014년 7월 ‘프로텍티브 엣지’(2203명 사망), 2021년 5월 ‘가디언 오브 더 월’(232명 사망) 등 헤아릴 수 없는 대규모 군사공격 작전으로 숱한 팔레스타인인들이 학살당했다.

서방 언론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건국 선포 이래 75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얼마나 끔찍한 학살 만행을 당해 왔는가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한다. 오로지 하마스의 비인도적인 측면만을 편파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선후 관계만 따져봐도, 서방 언론의 하마스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규탄이 얼마나 편향된 시각인지 금방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을 선포했고 하마스가 결성된 때는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뒤인 1987년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 점령하고 나서 한 세대 뒤에야 하마스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낳은 산물이다.

일란 파페(1954년~)는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가 ‘현존하는 이스라엘 지식인 가운데 가장 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인권운동가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종청소’라고 고발한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 ‘인종청소’ 계획인 ‘플랜 달렛’(Plan Dalet)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해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학살 만행으로 1947년부터 1949년까지 530개의 마을이 파괴되고, 1만 5천여 명이 학살당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85%가 난민이 되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출처: 일란 파페 저, 유강은 역, 『팔레스타인 비극사』, 열린책들, 2017년)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국 선포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 76만여 명(유엔 통계 기준)이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현재 가자지구를 비롯해 중동 전역에 5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흩어져 있다. 이스라엘 건국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였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일 다음 날인 5월 15일을 ‘나크바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은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2023년은 나크바 75주년이 아니다. 나크바는 75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75년에 걸친 점령과 학살에 맞서 목숨 걸고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테러’라고 단정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매일 이스라엘에 의해 죽어 나가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엔 모르쇠로 외면하는 주류 언론들은 팔레스타인이 저항이라도 하는 날에는 요란법석을 떨면서 일제히 비난과 규탄을 쏟아낸다. 이스라엘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며,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규탄하는 공식에 맞춰서 말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칼리드 나시프는 국내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호소한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하고 있는 일은 약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강탈하며 저질렀던 행위와 같은 것이다. 한국 또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나. 한국은 주권을 강탈한 일본에 대항해 싸웠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강제 점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주권을 되찾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경향신문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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