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과거를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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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논객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과거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를 관광지로 만들자는 독특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가 어디인가? 2011년 사고를 일으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됐던 곳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고 장소를 관광지로 만들자니 이 무슨 황당한 주장인가? 하지만 히로키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본인들이 핵발전소 사고를 망각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히로키는 핵발전소 사고를 재현하는 놀이기구를 만들자. 그렇게 해서라도 당시 사고를 기억해야 한다. 설혹 사람들이 그 놀이기구를 타면서 이거 죽이는데!’라며 환호성을 지르더라도, 사고를 잊는 것보다는 훨씬 낮다.”고 질타했다.

이 사례를 자신의 책 <우리의 민주주의거든>에서 소개한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일본인은 잊어버리기의 달인이다. 전쟁이나 비참한 공해의 재앙도 우리는 일단 지나버리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느덧 잊어버리고 만다.”고 한탄했다.

 

망각의 동물

그런데 나는 겐이치로의 이 한탄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류가 비슷한 망각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뇌는 매우 낙관적이다. 인간은 낙관하기에 모험을 한다. 숱한 실패를 겪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고 믿는다.

이런 낙관주의 덕에 인류는 도전과 성취를 계속하고(물론 실패는 그 보다 훨씬 많이 했지만) 역사의 진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미국 럿거스 대학교 인류학과 라이오넬 타이거(Lionel Tiger) 교수가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낙관적인 환상 덕분이라고 단언한 이유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가 낙관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바로 실패의 기억이다. 고통스런 실패의 기억이 뇌에 강하게 남아있으면 사람은 절대 낙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부족이 사냥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부족원들의 목숨만 잔뜩 잃었다고 하자. 이 기억이 뇌에 남으면 그 부족은 두려움 때문에 다음에 절대 사냥에 도전하지 못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뇌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실패의 기억, 아픈 기억을 잽싸게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 칼리지런던 대학교 교수는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법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뇌가 나쁜 기억을 빨리 잊어버리려 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습성 탓에 일본인들은, 아니 인류는 핵발전소 참사의 아픈 기억을 자꾸 잊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사고를 두고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로 가볍게 넘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 사고는 절대 그렇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사고는 무려 37년 전에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 사고의 수습이 다 끝났을 것 같은가?

핵발전소 사고가 무서운 이유는 방사능이 끊임없이 유출되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사고 직후 인류는 방사능 유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냉정히 말해 인류는 문제를 해결을 한 게 아니라 그 문제를 그냥 덮어버렸다. 농담이 아니다. 인류가 해법이랍시고 제시한 것이, 방사능이 유출되는 그 핵발전소를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구조물을 만드는 공사에 무려 80만 명이 동원됐다. 이토록 많은 인원이 동원된 이유는 방사능이 워낙 위험한 탓에 현장에 노동자가 몇 초 이상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읽어주기 바란다. ‘몇 시간이나 몇 분이 아니라 몇 초이상을 머무를 수 없었다. 그만큼 방사능은 위험한 물질이다.

당시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진짜 몇 초단위로 노동자들을 교대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노동자 중 상당수가 방사능에 노출돼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이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30년이라는 수명이 있었다. 그래서 2016년 이 구조물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 말은, 사고가 난지 30년이 지나도록 인류는 아직도 방사능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새로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의 수명은 100년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앞으로 100년 안에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는 또 다시 그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덧입혀야 한다. 즉 인류는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100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만약 그곳에 지진이라도 나면? 그래서 구조물이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갇혀있던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또 다시 우크라이나 일대를 덮칠 것이고, 인류는 다시 한 번 거대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래도 핵발전소 사고를 쉽게 잊을 수 있는가?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강행할 모양이다. 국민 불안이 치솟는 와중에도 윤석열 정권은 이를 막을 생각은커녕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아무 문제 없다며 장단을 맞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정녕 그렇게 간단히 일본의 딴따라 노릇이나 할 일인가? 아무리 인류가 망각의 동물이라 한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건강과 안전이 걸린 문제다. 핵은 그렇게 무서운 물질이다. 오염수 방류를 응원이나 하고 자빠진 듯한 이 한심한 정권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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