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과 원전 만능주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탈원전 축하 집회

4160(현지시각) 마지막 남은 독일의 원전 3곳이 모두 운행을 멈췄다. 독일에서 1961년 첫 원전 가동 이후 62년 만이다. 한때 37개의 발전용 원전이 운영되며 전체 전력의 1/3까지 생산했던 독일 원전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전을 5기 이상 가동한 국가 중 완전한 탈원전에 이른 국가는 독일이 처음이다.

독일은 지난해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6% 수준이었던 만큼 전력 공급에 큰 차질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리고 탈원전으로 인한 에너지 공백을 풍력·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독일은 사용 전력의 44%를 재생에너지에서 얻었는데, 오는 2035년까지 100% 확보할 계획이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탈원전은 독일을 더욱 안전하게 할 것이라며 이 세상 어떤 원전에서도 1986년 체르노빌이나 2011년 후쿠시마와 같은 재앙적인 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탈원전으로 더는 방사능에 고도로 오염된 핵폐기물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점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원자력은 3세대 동안 전력을 공급했지만, 이로 인한 핵폐기물 처리 부담은 앞으로 3만 세대가 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탈원전이 추진된 계기는 1986년 발생한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였다. 2000년 독일 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탈원전에 착수해 ‘2021년까지 모든 원전 폐쇄에 합의했다. 당시 연립정부는 원자력 진흥법을 탈원전법으로 교체하고, 당시까지 가동 중이었던 19개 원전 외에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후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2010년 탈원전을 철회하고 17개 원전의 가동 기한을 최장 2036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지 4개월여 만인 2011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독일 정부는 정책을 다시 바꿔 2022년 말까지 최종적인 탈원전을 결의했고 17개 원전 중 7곳은 즉각 가동을 중단했다.

마지막으로 가동중인 독일 이자르2 원전
마지막으로 가동중인 독일 이자르2 원전

독일의 탈원전 약속은 지난해 덮친 에너지 위기 앞에서 한때 흔들렸다. 지난해 2월 말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 이상(55%)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독일에 비상이 걸렸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전기 요금이 뛰고 탈원전에 반대하는 여론도 높아졌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탈원전 이행 약속을 지켰다.

독일이 선도적으로 탈원전을 단행했을 뿐 아니라 세계는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2 세계에너지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발전량 비중은 20219.8%에서 20309.6%로 감소하고, 신재생 발전량 비중은 202128.4%에서 203043.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2021년 기준 한국 전력 생산 에너지원은 석탄 34.3%, 천연가스 29.2%, 원자력 27.4%, 재생에너지 7.5% 순이다. (2021 전력통계) 우리나라의 원전 및 재생에너지 비중은 매우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원전 비중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확정해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202127.4%에서 203032.4%까지 높아진다. 전 세계 평균의 3.4배에 달한다. 신재생 비중을 7.5%에서 203021.6%까지 높인다지만 그래봐야 전 세계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부의 안전불감증과 원전 만능주의가 문제다. 지난해 6월 경남 창원에 있는 원전 관련 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더 키워나가야 할 원전 산업이 수년간 어려움에 직면해 아주 안타깝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동행한 정부 관료들에게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안전 중시를 관료주의라고 질타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도 원자력 발전을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강조했다. 원전 만능주의 사고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올여름에 방류한다는 방침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132t)의 방사성 물질 농도를 법적 기준치 이하로 낮춘 뒤 30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통해 오염수를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하지만, 과연 안전에 대해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일본인들조차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안정성에 대해서 의구심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원자력문화재단은 지난 4일 지난해 9~10월 방문 조사(전국의 15~79살 남녀 대상, 응답자 1200) 결과를 발표했는데, ‘오염수 바다 방류의 안정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24%)제시돼 있다’(9%)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또 응답자의 39.4%3의 기관이나 국제기관 등이 감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2.3%에 그쳤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떠한가.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코앞으로 다가온 현시점까지도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 문제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국가의 본분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을 제쳐두고 일본을 두둔한다면 이 정부는 과연 어느 나라 정부란 말인가.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공무원U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기사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