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 산동네에서 피어난 한국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달의 연극】형민이 주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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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는 영화 대신 연극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극단 해적의 ‘형민이 주영이’

 

“나는 사랑을 했다. 진정한 사랑을....그렇지만 내가 비난받아야만 할까? 나는 그렇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영이의 독백으로 연극은 시작과 끝을 맺는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잦은 자해와 자살시도로 장롱에 숨어 팬티 한 장만 걸치고 꽁꽁 묶여 사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형민이, 커밍아웃을 하고 집에서 쫓겨나 공사장을 전전하며 음식을 훔쳐먹으며 지내던 주영이. 베트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와서 형민이의 아이를 임신한 봉숙이. 사회적 약자 4명이 주인공이다.

 

주영이는 반찬을 훔쳐 먹다가 인부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형민이가 다가와 라면 두 개를 끓여서 같이 먹자고 한다. 라면 두 개의 매개로 인해 주영이는 형민이의 아내가 된다. 그리고 형민이에게 끝없이 헌신적으로 순종한다. 형민이는 불같은 성격으로, 스스로를 ‘호랑이’라 칭하며 집안에 오래있지 못하고 몇 달,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형민이의 아버지와 형민이 남기고 간 봉숙이를 보살피는 주영의 독백 “가진 것은 사람밖에 없더라”라는 것처럼 주영에게 소중한 것은 돈도, 직업도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장 소중했다.

 

황선택 감독은 말한다. “삶이란 원래 불편하게 많다. 아름다운 것, 불편한 것, 더러운 것, 추한 것 여러 가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연극의 장점이다”라고.......

‘형민이 주영이’는 전쟁 이후 달동네에 사는 이들의 암담한 현실, 그리고 동성애, 가족,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두 남자의 가혹한 운명 속 격한 사랑이야기이자, 본질적이고 절대적이며 뿌리 깊은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무대를 가득채운 재활용박스들, 빈 소주병, 막걸리병, 타고 버려진 연탄들, 구겨진 신문지가 덕지덕지 발라진 벽은 삼양동 산동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삶의 비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관계 안에서 진정한 인간의 연대를 느낄 수 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의 아버지는 웃는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라 웃는 사람이 슬픈 거라고 말한다. 즉 행복해지려고 웃는 게 아니라 슬픔을 감추기 위해 웃는다는 의미다. - 대사 중에서 -

현실의 슬픔을 감추기 위해 종종 웃음을 터지게 한다. 하지만 결국은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연극이다.

 

2014년 공연 이후 3년 만에 다시 올려진 ‘형민이 주영이’는 제14회 <밀양 젊은 연출가전>에서 작품상과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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