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양지혜씨, 단원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산 자의 의무를 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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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지혜씨가 직접 작성한 단원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 영지혜씨가 직접 작성한 단원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시민, 사회, 노동 600여개 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www.sewolho416.org)'는 24일 저녁 6시 청계광장에서 4만여 명(6시 40분 현재)의 시민과 함께 "세월호 참사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천만인 서명, '천만의 약속' 대회와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범국민 촛불문화제 첫 발언에 나선 양지혜 씨가 단원고 학생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참가한 시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다음은 양지혜씨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가만히 있으라’ 추모 행진 청소년 제안자 3인 중 한 명인 양지혜라고 합니다.
오늘로 해서 다섯 번째 추모행진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추모행진에 참여할 때마다 날씨가 참 좋아요.
햇빛에 이파리가 반짝거리고, 참 누군가와 같이 걷기 좋은 날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서, 더는 함께 걸을 수 없는 여러분들을 추모하는 것이 더욱 슬펐던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날에, 당신들이 없구나. 이렇게 좋은 날이, 당신에겐 없겠구나. 하는 기분에.
 
여러분을 생각하며 참 많은 시간을 걸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러분과 같은 나이인 저를 보며, 어떤 분은 기특하다고 했어요. 어떤 분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어요. 아직 꽃피지도 않은 나이인 아이들이 죽어 안쓰럽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말들이 오히려 싫었어요. 왜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기특한 건가요. 우리는 왜 지킴 받아야만 했나요. 우리는 왜 꽃 피울 수 없는 나이어야만 하나요.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의 입장으로 여러분들의 죽음을 생각해봤어요. 여러분의 삶도 저와 다르지 않았겠지요.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을 걱정하며, 어른들의 “가만히 공부나 해”,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어.”라는 소리를 들으며,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은 다 뒤로 미뤄뒀겠지요. 그랬겠지요. 삶을 유예 당했겠지요.
 
행진을 하면서, 반짝이는 이파리를 보면서 또 생각했어요.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 이 이파리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지금 이 무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행복하기 좋은지…. 공부하느라 바쁜 우리들은 사실 잘 모르고 살잖아요.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모르고 살아야 되는 게, 순간 되게 억울해졌어요.
 
그럼 우리도 죽어가는 게 아닌가. 미래를 담보로 주체성을 말살당하는 우리 나이 열여덟은 과연 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싶었어요. 여러분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건 아마 유예된 미래 때문일 거에요. 유예해야만 했던 모든 순간들 때문일 거에요. 그 순간에 여러분은 이미 죽어 있었을지도 몰라요. 우리처럼.
 
그래서 청소년 가만히 있으라 행진을 제안했어요. 여러분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죽어가는 우리를 더는 죽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왔어요. 기특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도 주체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우리의 이런 행동들이 당연하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어떤 분은, 부모님이 엄하셔서 이런 자리에 많이 못나온다고, 나올 수 있는 여러분들이 사회를 바꿔달라고 하셨어요. 
 
산 자의 의무를 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을게요. 여러분을 죽게 한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의 시스템이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도록, 분노하고 행동할게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청소년으로서, 더욱이 가만히 있지 않을게요. 더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이승에서의 싸움은, 우리가 할게요. 명복을 빌게요.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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