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목

파락호(破落戶)의 비밀

닉네임
촌닭
등록일
2015-02-01 18:25:59
조회수
6297

♥ 주제모르는 파락호 정치인에게 참혹한 징벌을 내려야한다. ♥





< '파락호(破落戶) 비밀을 아시나요. >

퇴계의 제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학봉 김성일(1538~1593)의 명문가 집안.
"집안 망해 먹을 종손이 나왔다!"

파락호(破落戶)의 의미는,
'양반집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은 난봉꾼'을 말합니다.

대대로 이어온 종갓집과 논과 밭.
현재 시가로 약 200억 원의,
전 재산을 다 날리고,
해방 다음 해.
1946년 4월 26일 김용환 세상을 떠나다.

그러나 훗날 밝혀진 비밀은,
노름으로 탕진한 줄만 알았던 재산이,
고스란히 만주 독립군으로 보내진 것이다.



< 파락호(破落戶)의 비밀. >

일제 강점기 안동.
노름꾼이란 노름판에는 모조리 돌며,
재산을 탕진하던 조선의 으뜸가는 파락호.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 김용환.

왜정 때 안동에서 당대의,
'파락호'로 이름을 날렸던,
유명한 학봉종가(鶴峯宗家)의 13대 종손인,
김용환(金龍煥 1887~1946)이 바로 그 인물입니다.


김용환(1887~1946) 21세 모습이다.

그는 초저녁부터 노름을 하다가,
새벽이 되면 판돈을 걸고,
마지막 베팅을 하는 주특기가 있었습니다.

만약 베팅에 실패하면,
"새벽 몽둥이야!"하고 큰 소리를 외치면,
도박장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그의 수하 2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
판돈을 덮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파락호가,
만주에 독립자금을 댄,
독립투사였음이 사후에 밝혀졌습니다.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946년 임종 무렵에 동지가 머리맡에서,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고 하자,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눈을 조용히 감았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철저히 노름꾼으로 위장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평생 뒤집어쓴 파락호라는 불명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 오랜 친구의 권유.
"이제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의 마지막 대답.
"선비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말게"

결국 사진 한 장조차,
남겨 놓지 않고 떠났지만,
광복 50주년 1995년,
김용환(1887-1946)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다.

♥편안함과 쉼이 있는 공간

^^ 머무시는 동안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俊夏
작성일:2015-02-01 18:25:59 211.114.22.13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비회원 로그인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