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 백발의 투사 '백기완', 그의 마지막 발걸음
19일, 故 백기완 선생 사회장 엄수
평생을 아스팔트 위에서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싸워온 백발의 투사가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뎠다. 19일 故 백기완 선생의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지난 15일 소천한 백 선생의 장례는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발인을 시작으로 대학로 노제로 이어졌다. 백 선생의 대형 영정을 앞세운 운구행렬은 노제에 앞서 선생이 생전에 머물던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를 들러 제를 올렸다.
이어서 영결식이 서울시청광장에서 엄수되었다. 영결식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호일 위원장과 최현오 부위원장, 조합원들도 함께했다. 영결식 조사에서는 백 선생에 대한 그리움과 그를 떠나 보내야하는 절절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문정현 신부는 조사에서 "제가 백 선생님께 다가가 인사하면 꼭 손을 잡고 당신 옆에 앉히셨다. 백 선생님 옆자리가 곧 제자리인 줄 알고 살았다"면서 "그런데 이렇게 가시면 어디에 앉을까. 제 자리가 없어진 것 같다. 곧 만나 뵙겠다. 백 선생님을 다시 뵙는 그 날까지 선생님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고 민중의 한 사람으로 투쟁한 선생님의 삶만 오롯이 기억하겠다. 선생님께서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바쳐 한평생 나아가던 삶을 민주노총이 이어가겠다"면서 "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의 간절함을 실행에 옮기겠다. 모두가 일하고 함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은 "(백 선생님이) 부축을 받으며 겨우겨우 빈소 안으로 들어오셔서 손자뻘 되는 용균에게 큰절을 두 번 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기가 막혔다. 아들이 살아있으면 그 어른에게 큰절해야 옳거늘 세상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고 있음을 백 선생이 몸소 표현해줬다"면서 "마지막 부탁이 있다. 저세상에서 용균이를 만나면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잘 있으라고 꼭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명진 스님은 "백 선생 영전에 극락왕생을 위해 영전 반야심경을 올리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자식 잃은 엄마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데 내가 염불 듣고 극락 가겠소? 극락은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스님은 민중을 핍박하는 사람들 꾸짖는 것으로 염불 삼으시오"라고 할 것 같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영결식은 416합창단과 이소선합창단, 평화의나무합창단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과 진혼무, 송경동 시인의 조시, 가수 정태춘의 조가 순으로 이어졌다.
백 선생의 누이인 백인순 씨는 유족인사에서 "오늘 많은 분이 모여서 노나메기 벗나래를 이루고자 버선발로 나선다고 하니 오라버니도 마음이 든든하실 것이다. 솔직히 민중, 노동, 통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저도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뒤따라 가겠다"며 영결식에 함께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영결식은 고인이 생전에 '몰아쳐라 민중이여'라는 구절만 들어도 힘이 난다는 '민중의 노래' 합창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헌화를 마친 운구행렬은 장지인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으로 향했다. 하관식에서는 유족들이 백 선생의 무덤 위에 흙을 덮고 절을 올렸다. 이 자리에도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백 선생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백 선생은 전태일 열사의 옆자리에 안장되어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