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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기록은 나로부터 시작한다[정흥모 칼럼] 기록이 미래다 (5)
정흥모 이야기너머 대표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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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6  13: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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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총으로 오늘 튼튼한 노예가 태어났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리나이다”

흑인 노예가 아들을 낳았을 때 백인들이 했다는 이 기도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에 등장하는 기도문이다. 뿌리의 출간은 미국이란 나라에, 또 전 세계에 이 기도문 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뿌리>를 쓰기 위한 알렉스 헤일리의 여정은 책만큼이나 극적이고 험난했다. 1965년 7월, 미국에서 말콤 엑스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6백만 부나 팔려나갔다는 이 자서전은 알렉스 헤일 리가 쓴 첫 책이었다. 당시, 백인 보수주의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강력한 흑인운동 지도자 말콤 엑스는 정작 본인의 자서전이 출간되기 6개월 전 암살을 당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 직후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찾는 길고도 먼 여정은 시작된다.

알렉스 헤일리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들었던 흑인 노예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끝에 아프리카를 향해 떠난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더듬어 조상들을 추적한 끝에 ‘토비 아저씨’라고 불렸던 7대조 할아버지가 1767년 아프리카의 감비아에서 백인들에게 납치당해 노예로 팔려온 쿤타 킨테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직접 그 나라를 찾아간다. 머나먼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혈육을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

노예로 팔려가면서 쿤타 킨테가 겪었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가는 화물선을 타면서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밤마다 속옷만 입은 채 어둡고 추운 배 밑바닥에서 열흘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취재와 답사, 쓰기에 바쳐진 시간이 10년, 여행한 거리는 50만 마일을 넘었고 만난 사람도 수천 명을 넘었다. 

<뿌리>가 출간된 다음해인 1977년 그는 ‘노예제도에 관한 기록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1979년 미국 ABC 방송사는 ‘뿌리: 그 다음 세대들’이라는 연속물로 쿤타 킨테 후손들의 삶을 제작, 방영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뿌리>는 개인의 역사가, 가족의 역사가 왜 그렇게 중요하며 그 기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형을 보여준 작품이다. 한 개인의 기록이나 가족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며 그 물음에 답하는 아주 성실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뿌리>는 미국사이며 흑인들의 역사이고 알렉스 헤일리의 가족사이다. 고난에 찬 조상들의 삶을 뒤따라 체험하며 사회적 트라우마의 정체를 밝혀가는 극적이고도 험난한 과정의 기록이다. 그것을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물음이었으며 또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무릇 모든 기록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법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절박하고도 본질적인 물음과 답으로서 매우 적절하고도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웅변한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내 시간 위를 흘러 지나가는 저 봄날의 흙먼지 한 무리처럼, 역사라는 것을 한낱 하잘것없는 잡담으로 치거나 번거로운 바람, 혹은 털어내 청소해 버릴 흔적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나와 무관하여, 이미 죽어 버린 자들의 잠꼬대 같은 기록에 불과한 것이 되겠지만. 티끌같이 작은 일도 내가 온몸을 열어 놓고, 오관을 다하여, 마음으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면, 역사는 바로 그 순간에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체화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나로부터 엮어 보는 역사 (歷史). 역사의 현장을 교과서에서 찾지 말라. 바로 나 자신에게서 역사를 찾으라. 내가 없는 역사를 무엇에 쓸 것이냐. 까마득한 고조선의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몇 천 년을 편년체로 지루하게 엮어 내려오는 역사는, 나한테까지 당도하기도 전에 기진맥진 지치고, 외우기 너무 멀어 오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가 누구인가” 정말 궁금하여 아버지, 아버지가 살던 땅,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살던 시대, 증조부, 고조부, 선세(先世) 옷깃을 찾아 오르고 오르면서 드디어 단군 할아버지에 도달하는 길은 절실하고도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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