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남 칼럼] 숲에서 세상을 만나다 <5>

불통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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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이의 존재’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다른 생명들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람을 의미하는 한자는 ‘인(人)’이란 글자 하나로 되어 있지 않고, ‘사이 간(間)’자를 더하여 ‘인간(人間)’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단어에서 ‘간(間)’이 의미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즉 ‘교감과 소통’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감과 소통’은 ‘사이 즉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관계가 온전할 때에야 비로소 교감과 소통이 올바로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교감과 소통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할 때 그 공동체는 질식하고 죽어가며 종내는 파괴된다. 새로운 생명들이 일궈내는 새로운 질서들이 다시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하나의 종으로만 이루어진 숲은 얼핏 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생명력 충만한 건강한 숲은 아니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 야생화들, 풀들 함께 어우러져야 생명력 풍성한 아름다운 숲이 된다. 다양한 생명들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숲이 이루어진다. 생명들과의 온전한 교감과 소통이 있을 때에만 숲은 건강해지며, 이러한 교감과 소통이 부족할 때 숲은 풍성한 생명력을 잃어가고 끝내 병들고 쓰러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 ‘교감과 소통’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온전히 이루어지기는커녕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관계 설정이 올바르지 않거나 아예 파괴 되어 단절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통령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을 섬겨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통치자로서 군림하고 다스리려고만 한다면, 이미 관계 설정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니 국민과 대통령, 정부 사이에 온전한 소통이 일어날 리 없다. 그 사회가 건강하고 평화로울 리 없다. 그 사회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리 없다.

▲ 하나의 종으로만 이루어진 숲은 얼핏 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생명력 충만한 건강한 숲은 아니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 야생화들, 풀들 함께 어우러져야 생명력 풍성한 아름다운 숲이 된다.
▲ 하나의 종으로만 이루어진 숲은 얼핏 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생명력 충만한 건강한 숲은 아니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 야생화들, 풀들 함께 어우러져야 생명력 풍성한 아름다운 숲이 된다.

이정현 홍보수석이라는 사람이 기자회견을 한 모양이다. 기자 회견에서 “박대통령이 불통이란 지적이 가장 억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자신이 모시는 사람이고 임명권자이니 옹호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백 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홍보 수석이란 이 사람은 정말 박대통령이 소통을 온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는데, 그 눈물의 진정성을 믿는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역시 교감과 소통에는 관심이 없는 불통의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이 동원 되어 부정선거를 한 것이 만 천하에 드러났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나는 도움 받은 것이 없다’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이 불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도움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라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미 그 선거는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다. 부정이 자행되어 정당성이 상실된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당연히 사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맞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주장하는 국민들 종북으로 몰며 여론몰이 하고 있으니 어찌 불통이라 아니할 수 있는가. 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들은 부정선거를 거부하고 부정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사퇴하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국민들을 종북으로 몰고 있으니 어찌 불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대통령과 현 정부는 자신들과 다른 생각과 주장들을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 나라를 마치 전제주의 국가처럼 하나의 생각만이 존재하는 나라로 만들려는 환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생각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이 지구상에, 내가 아는 한, 북한 밖에 없다. OECD가입국이며, 세계 경제대국 중 하나인 이 사회공동체의 생각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정말 믿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생각만 있는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각들과 행동들이 존재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하나의 생각만을 가진 사회를 만들기 위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하고, 이를 위해 공안통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3년 만에 일어난 내란 음모 사건, 법원의 판결로 그 법적 지위가 일시적으로 인정되기는 하였으나 공무원 노조에 대한 불인정,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 부정선거의 부당성을 말하는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에 대한 종북 몰이에 이르기까지 대화는 없고 오직 겁박하고 탄압한다.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에 들어가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한 무차별적으로 남발되고 있는 체포영장발부가 그 대표적 예라 아니할 수 없다. 대화는 없고 체포만 있다. 여론몰이만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러한 데도 박대통령이 불통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제일 억울하다는 것인가? 그 모습이 정말 절망적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소통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의 절망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여러 해 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의 일이 생각난다. 온 종일 걸어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깊은 숲길 지나며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빗소리 등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듣다가 함께 길 걷던 동료에게 말을 건넸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의 선출직 정치인들은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자격증이 있어야 출마할 수 있다는 법을 하나 만들면 좋겠어.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어야 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국민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는 않잖아. 모두들 제 말들만 하니 말이야. 산길 걷다 보면 저절로 듣는 귀가 열리고, 듣는 마음이 되거든…”

이리 말하며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웃음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아서는 정말 이런 법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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