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 ‘경쟁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윤석열의 헛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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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뭣도 모르는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얼마나 멍멍이판이 될 수 있는지를 윤석열 대통령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초 청와대 영빈관 2층에서 진행된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연두 업무보고(그런데 이런 건 왜 또 청와대에서 하는 건지?)에서 윤 대통령이 “교육을 국가 독점시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경쟁시장 구도가 돼야만 가격도 합리적으로 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관련 상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소식.

아 진짜, 제발 멍청한 건지 무식한 건지 둘 중 하나만 해라, 물론 이왕이면 멍청한 쪽을 추천하긴 한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세세히 살펴볼 가치조차 없다. 온 세계가 신자유주의식 성장의 한계를 절감하며 협력과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이때에 교육 시장에서조차 경쟁을 더 강조한다는 게 어떤 멍멍이소리인지 독자분들이 잘 아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증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사교육 업체들의 주가가 폭등했단 말이다. 사교육 업체인 아이비김영 주가는 17.39% 급등했고, 메가엠디 주가는 6.81%, 아이스크림에듀 주가는 3.66%, NE능률 주가는 2.56% 올랐다. 다른 대부분 교육주 또한 주가가 오른 채로 장을 마쳤다.

이게 무슨 뜻이겠나? 윤석열 표 ‘경쟁 교육’은 사교육 업체들 돈 벌어주는 정책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시장의 해석이었고 나 역시 그 해석에 동의한다. 이분이 진짜 나라 교육을 통째로 말아 드시려고 작정하고 있다.

 

틀의 중요성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의 생각을 제한하는 울타리를 틀, 혹은 프레임(frame)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주류 경제학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은 프레임에 의해 쉽게 좌우된다.

틀이 인간의 생각을 얼마나 좌우하는지에 관한 실험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 리 로스(Lee Ross)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이들에게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을 시켰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대해서는 지면 사정상 상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다만 간략히 설명하자면 상대를 배신하는 게 유리한가, 협력하는 게 유리한가 실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게임이론이다.

주류 경제학이 옳다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결론은 언제 어디서건 똑같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므로 이 게임을 바다에서 하건, 육지에서 하건, 청소년 수련장에서 하건 결과가 달라질 이유가 없다. 모두가 배신의 버튼을 누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로스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게임의 틀에 아주 작은 변화만 줘도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로스 교수는 첫 번째 그룹에게 “우리가 지금부터 하는 게임 이름은 공동체 게임입니다”라고 알려줬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게임 이름은 월가 게임입니다”라고 일러줬다. 게임 이름 외에 다른 조건은 모두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벌어졌다. 단지 이름을 ‘공동체 게임’이라고 불렀을 뿐인데, 첫 번째 그룹은 참가자들 중 무려 70%가 상대에게 협력하는 길을 택했다. 반면 월가 게임이라는 이름 아래 참여한 두 번째 그룹 참가자 중 무려 70%가 상대를 배신했다. ‘월가’라는 이미지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놓고 남을 죽고 죽이는 곳이 바로 월가 아닌가?

이 실험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간이 언제나 일관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아주 작은 틀을 설정해 놓으면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 틀에 갇힌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동체입니다”라고 알려만 줘도 사람은 협동을 선택한다. 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의 전쟁터에요”라고 살짝 귀띔해도 사람은 상대를 쉽게 배신한다.

 

유토피아를 향한 우리 사회의 틀

누군가 나에게 “어떤 세상을 꿈꾸세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연대와 협동이 기초가 되는 공동체의 사회를 꿈꿉니다”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표정으로 “경제학을 공부하셨다는 분이 뭐 그런 허황된 꿈을 꾸고 사세요?”라고 반문한다. 필자보고 공상주의자나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여럿 봤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한 적도 한 번도 없다. 과연 연대와 협동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불가능한가?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경쟁을 기반으로 서로를 짓밟는 세상인가? 우리가 길들여져서 그렇지, 사실 이는 우리의 본성이 경쟁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다.

해답은 간단한 곳에 숨어있다. 우리가 서로를 짓밟는 이유는, 태어나서 자라다보니 그 어느 곳에서도 경쟁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그렇게 사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이게 하나의 틀이 된 것이다.

이 틀을 조금만 바꾸면 어떨까?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돕고 살아야 아름다워진다”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연대와 협동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라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다. ‘월가 게임’이라는 이름의 게임에서 사람들의 70%는 배신을 선택하지만, 게임 이름을 ‘공동체 게임’으로 바꾸면 그 70%를 협동의 길로 안내할 수 있다.

교육은 바로 그 틀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은 ‘시장’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틀 속에 가둬서도 안 된다. 대통령이라는 자(‘작자’라고 쓰려다 참은 거다)가 “교육도 경쟁시장으로 만들겠다”는 헛소리를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은 전형적으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꿈꾸는 세상이 그런 건지 몰라도 그런 세상은 향후 벌어질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 아무런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고작해야 사교육 업체 주가나 띄워주는 걸 대통령이 교육 정책이랍시고 발표하고 있다니,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지 나는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나라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 기성세대 탓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까지 이 지옥을 물려주지 않아야 할 당연한 책무도 역시 우리 기성세대에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이 5년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끝없이 투쟁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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