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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비(法匪)의 ‘법과 원칙’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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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2.20  16: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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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선 정부부터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정부가 모범적으로 법과 원칙을 준수하면서 국민에게 준법을 요구해야 설득력이 있을 터다. 그런데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 기간 유난히 강조했던 법과 원칙은 ‘위법과 반칙’으로 점철돼 있었다.

먼저, 윤석열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위헌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주적인 단결권(노동조합)과 단체행동권(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부정하고 불온시하는 것은 위헌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여당의 당국자들은 헌법을 부정하는 망발을 계속했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불법과 범죄를 기반으로 하는 쟁의행위에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특히 지난 5일 연합뉴스 기사로 보도된 “화물연대 파업,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은 충격적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자의 쟁위행위 자체를 ‘불법과 범죄’처럼 예단하면서, 노동자를 적으로 대하고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 행사를 범죄로 여기는 위헌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말까지 생겼다”며 “민노총이 계속 이 길을 간다면 머지않아 성난 민심의 파도에 휩쓸려 소멸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차기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민노총을 해체해 세상을 살리자!”라고 선동했다. 여당 관계자들의 막말은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를 부정하는 망언이다. 정부‧여당 스스로 위헌 세력임을 실토하는 셈이다.

또한, 정부가 화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간주하고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이 아니라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위법이다. 대법원 판례를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화물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된다. 대법원은 2018년 기존 판례를 바꿔 학습지 교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부가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이 아니라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위법이다.

정부의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은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국제노동기구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강제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제29호)을 비준해 지난 4월부터 발효됐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은 제87호 협약과 제29호 협약 위반이다. 정부가 비준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상위 법률을 위반한 국토교통부 장관의 업무개시 명령은 위법이다.

정부부터 법과 원칙을 지켜라. 정부가 법을 준수하면서 노동자에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자에게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반칙이다. 정부가 법을 어기고 반칙을 남발하면서 법과 원칙을 들먹이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정부의 위헌‧불법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며 반드시 심판받게 될 것이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노조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국가는 민주노총에 1억 원, 전국공무원노조에 5천만 원 등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원고들은 2018년 6월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주도해 노조의 하부조직 탈퇴 유도, 선거·총회 결의 등 노조 활동 방해, 노조 비난 여론 조성 등의 공작을 벌여 단결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언론을 이용해 노조를 비방한 공무원의 행위는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비롯한 제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히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원고들은 소송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 문서를 입수했다. 문서에는 노조가 집회를 개시할 경우 경찰을 통해 금지통보를 발령하고, 검찰을 통해 파업참여 조합원에 대해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하게 하며, 주무부처가 사용자와 접촉하여 정부의 지원 중단을 겁박하거나 파업 중인 노조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유도해 파업 중단을 압박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원, 고용노동부 등 주무부처, 경찰, 검찰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했던 공작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기관을 동원해 노조탄압을 벌였던 것과 현재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보여준 모습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윤석열 정부의 법과 원칙은 법비(法匪)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법비는 법률을 의미하는 법(法)에 도적을 가리키는 비(匪)라는 글자의 합성어로 ‘법 도적’이라는 의미다. 1930년대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뒤 법을 앞세워 약탈과 탄압을 일삼던 시절, 당시 중국인들이 일제 침략자와 그 부역자들을 법비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비적은 무장이 필요하지만 법비는 무장도 필요 없었다. 무소불위의 법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법학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일컬어지는 법사회학의 대가 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은 법의 악용과 오판으로 인한 폐해를 사법살인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사법살인은 법률의 수호자와 파수꾼이 법률의 살인자로 변하는 현상”이라면서, 사법살인자는 곧 환자를 독살하는 의사이며 피후견인을 교살하는 후견인과 같다고 섬뜩하게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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