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남 칼럼] 숲에서 세상을 만나다 <4>

세상의 바탕은 자연, 국가의 바탕은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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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십 년은 된 듯하다.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친구가 여행을 청했다. 몸도 아프고 가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어 함께 길을 떠났다. 오대산도 걷고 설악산에도 들어갔다. 비선대에서 동동주 한 잔 나누었다. 별 내용 없는 이런 저런 말을 나누었던 것 같다. 나는 비선대의 암벽에서 위태하게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들에 마음을 건네고 있었다. 그들은 다양한 표정과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고개를 삐죽 내민 놈은 호기심이 많은 듯하고, 양팔을 하늘로 치켜든 놈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듯하고, 한 팔을 나를 향해 내뻗은 놈은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고,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만 같은 놈은 마음의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눌하면서도 팽팽한 아름다움이 비선대의 절벽 틈 사이로 그득했다. 그렇게 소나무 구경에 마음 팔려 동동주 한 잔 나누다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말 없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아까 비선대의 암벽에서도 보았지만, 저 소나무 좀 봐. 커다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잖아. 엄청나게 큰 바위인데도 바위를 가르고 뿌리를 내렸어. 대단하지. 저런 힘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친구의 얼굴을 보니 진정으로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소나무가 바위를 가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바위가 그 단단한 가슴을 열어 소나무를 받아들인 것이지. 바위가 제 가슴을 찢어 때로는 뼈를 부수고 때로는 살을 내어주며 소나무를 살리고 있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아니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너처럼 생각하니 좋은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국민들 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거야. 자신들이 국민들을 이끌고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국민들이 그들을 받아들여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기본적인 생각이 잘못된 거야”

자연은 생명을 받아들인다. 쓰레기를 받아들여 생명을 키워내고, 주검을 받아들여 생명을 잉태한다. 무릇 뭇 생명치고 자연에 빚지지 않은 생명은 없다. 그렇기에 늘 자연을 경외하고 존중하며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자연은 경외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재화를 쌓기 위한 이용물의 지위로 떨어진지 오래 되었다. 이러한 천박한 인식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천박한 인식이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도 그러하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하다. 이 세상의 바탕이 자연이듯, 이 나라와 사회의 바탕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시민들이다. 그러나 자연을 경외하고 존중하지 않든 국민들을 경외하고 존중하지 않는다. 그저 선거 때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는 이용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제멋대로 해도 되는 상대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정말 주권자인 국민들을 경외하고 존중한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을 잉태한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자연에 빚지고 있다. 그렇기에 늘 자연을 경외하고 존중하며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
▲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을 잉태한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자연에 빚지고 있다. 그렇기에 늘 자연을 경외하고 존중하며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는 화두는 부정선거와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된 ‘대통령의 사퇴‘이다. 카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계가 나서고 있고 국민들의 요구도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이것은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 부인하는 것”이라며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서 처벌할 것이라고 한다. 또 “국론 분열”이라고 하며 국론분열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이야기다. 본래 자유민주주의란 생각이 하나 일 수 없는 체제이다. 하나일 수도 없고 하나이어서도 안 되는 정치 체제이다. 모두가 하나인 사회는 북한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생각은 단호히 배척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면서 대통령이나 정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생각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민주당이나 야당들은 ‘부정선거’이니 ‘대통령사퇴’니 하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와 국민의 자유를 위해 국민의 입장에서 싸울 생각은 아예 없는 듯 보인다. “대선 불복이냐?” 하고 정부와 여당이 물으면 “그건 아니다.”하며 손사래 치기 바쁘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대통령 자신도 부정선거였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부정이 없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도움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대선불복하면 안 되는 일일까? 왜 대통령사퇴를 말하면 안 된단 말인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자유와 권리가 있다. 이런 자유과 권리가 없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북한 밖에는 없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민주당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는 않고 당리당략에 머물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 못해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을 선출한 나 같은 국민들만 불쌍할 뿐이다.

바위가 제 가슴을 열어 소나무를 받아 들여 살아가게 하듯이, 국민들이 국민들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라고 그들을 받아 들여 준 것이다. 국회의원으로 선출해 준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면 대통령이나 정부의 소리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든지, 싸움을 멈추든지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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