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임금 1.7% 인상, 공직 사회 망치는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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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디 가서 저임금 노동자 하면 절대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응?) 중 한 명인데, 공무원 노동자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절대 함부로 못하겠다. 나는 최저임금이라도 받는데, 하위직 공무원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나보다 낮은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나라가 공무원 노동자들을 어디까지 밀어붙이려는지 궁금하다.

지난달 말 윤석열 정권이 내년 5급 이하 공무원의 임금을 1.7% 인상하겠다고 밝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것들이 진짜로 미쳤나?’ 싶었다. 현재 9급 공무원의 월 실수령액은 168만 원선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선의 봉급을 받는 나도 그것보다는 많이 받는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 공무원들 인내심 테스트 하냐?

공무원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박한 것은 옛 민주정권이나 윤석열 정권이나 막하막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이 결정은 물가 상승률이 21세기 최고치를 향해 치닫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그 무게감이 아예 다르다. 7월 소비자 물가는 이미 작년에 비해 6% 넘게 올랐다. 이런 상황에 1.7% 인상은 평온하게 말해 임금 삭감, 거칠게 말해 “공무원들은 손가락이나 빨며 살다 죽어라”는 사형 선고 같은 것이다.

 

결핍의 문제점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 교수와 프린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엘다 샤퍼(Eldar Shafir) 교수는 <결핍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경제학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가 결핍, 즉 부족함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일단 결핍이 낳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결핍이 일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특히 시간이 부족할 때 사람들의 집중력이 배가돼 일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저 일을 시간 내에 마쳐야 해’라는 절박함이 인간의 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벼락치기가 대표적인 경우다. 한 달 전에 미리 공부를 할 때보다 하루 전 벼락치기 상황에서 사람의 집중력은 훨씬 높아진다. 한 달 전에 비해 하루 전이 암기도 잘된다. 이것이 바로 결핍이 낳는 긍정적 효과다.

문제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데 있다. 결핍 상황에서 뇌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변 일이 엉망진창이 된다. 뇌의 주력이 오로지 과제 달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마감에 시달리는 작가나 기자들을 보라.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방이 개판이 된다.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이고, 먹다 남은 컵라면 국물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며칠 째 샤워를 못해 몸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싱크대에서 음식이 썩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분명한 뇌는 주어진 과제에 집중을 하면 그 외의 모든 일에서 집중력을 잃는다. 청결이나 위생, 심지어 자신의 건강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멀레이너선과 샤퍼의 연구를 살펴보자. 알다시피 소방관은 매우 위험한 직업이다. 그런데 1984년~2000년 미국 소방관들의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상식적으로는 사고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뜻밖에도 소방관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심장발작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망 원인 2위가 교통사고라는 점이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은 전체 사망자의 25%나 됐다.

그렇다면 왜 소방관들이 교통사고로 많이 죽을까? 물론 ‘긴급한 상황에서 차를 빨리 몰다보니 사고가 잦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난다고 사람이 다 죽는 게 아니지 않나? 소방관들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망으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의 대부분(79%)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널링 이펙트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소방관들이 결핍 현상을 너무 자주 겪기 때문이다. 긴급한 신고를 받으면 소방관들은 단 1초라도 빨리 출동해야한다는 절박한 시간 결핍을 겪는다. 이러다보니 뇌가 ‘빠른 출동’에만 집중하게 되고,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이런 현상을 ‘터널링 이펙트(Tunneling Effect)라고 부른다.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오로지 터널 밖으로 나가는 데에만 집중한다. 당연히 시야가 좁아지고, 자기가 집중한 일(터널 탈출) 이외의 대부분을 잊는다. 결핍이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2017년 여름 필자는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노동자의 첫 마디가 “기자님이 이야기하셨던 터널링 이펙트, 그거 정말 저희들이 절감하고 있습니다”였다.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안전을 관리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핵발전소의 안전은 수백 만 민중들의 목숨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뇌는 오로지 그 일을 수행하는 데에 풀가동된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개인의 안전과 건강에 소홀해진다.

이 이론을 다른 공무원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해보자. 한 달 실수령액 168만 원을 주고 일을 하라고 시키면 그 노동자들은 당연히 엄청난 결핍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노동자들의 뇌는 어디에 집중할까? 당연히 생존에만 집중한다. 생존은 눈앞에 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때 터널링 이펙트가 작용한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생존 외의 모든 일에 무감각해진다. 국민을 위한 봉사? 그게 될 리가 있나? 당장 다음 달 월세 낼 돈도 없는데!

워라벨? 웃기지 마라. 내가 최저임금을 받아서 아는데 그 상황에서 뇌는 워라벨 같은 것을 떠올리지조차 못한다. 건강, 행복, 인간다운 삶···, 뇌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존에만 집중한다. 그 와중에 성과 내겠다고 공무원 노동자들 야근 시키고 뺑뺑이를 돌리겠다고? 그게 퍽이나 잘 되겠다.

시장시장 거리며 공공부문을 무시하는 현 정권의 행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 노동자들을 생존의 위협에 빠트리면서 “우리는 성공한 정권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라고 운운한다면 염치가 없어도 심하게 없는 거다. 그 성공한 정권을 누구랑 만들 건데? 공무원 노동자들과? 어이쿠, 잘들 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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