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진현채 사무처장 (전북지역본부)

"후배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다면 '센 이미지' 문제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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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공무원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감동적인 투쟁사로 좌중의 마음을 흔든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떻게든 먹고 살 테니, 청년들의 보수를 합리적으로 지급해 달라. 시위대 옆을 지키고 있는 경찰노동자도 연대해 달라!, 공무원노조 전북본부 진현채 사무처장의 발언 내용 중 일부다. 8월의 막바지,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발언하던 그를 직접 만나봤다. 

▲ 전북본부 진현채 사무처장
▲ 전북본부 진현채 사무처장

진현채는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는 서울에서 보냈고, 대학은 부산에서 나왔다.
2008년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됐고, 가치관이 잘 맞아 든든한 후원자이자 인생의 동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전교조 세대인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 학생운동을 경험했다. 사회변혁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기도 했지만, 91년 강경대 열사 등 학생운동권의 죽음이 줄을 잇자 깊은 절망에 빠져 운동의 길을 떠나 마음의 빚을 주홍글씨처럼 새긴 채 일상적인 생활을 택했다. 

▲ 전북본부와 남원시지부 간부들이 제주4.3역사기행에 함께하고 있다.
▲ 전북본부와 남원시지부 간부들이 제주4.3역사기행에 함께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당연히 모성보호의 권리를 누리는 것에도 눈치를 봐야 하는 현장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있는 제도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직원들이 허다함을 그냥 간과할 수는 없었다. 
특히 2013년 그가 둘째 아이 출산 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아이의 양육을 위해 유연근무제도를 활용, 근무시간을 조정(10시~16시)하여 아이 양육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 그야말로 그 제도가 일과 가정 양립의 취지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장이 그가 근무하던 부서를 방문했을 때, 이러한 좋은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데, 돌아온 답변은 “본인이 부서에 알아서 밥도 사고 술도 사면서 해결하라”는 식이었다. 

▲ 전북본부 운영위원들이 성평등교육을 마치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 전북본부 운영위원들이 성평등교육을 마치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진현채는 ‘이건 좀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 불합리함을 바로 잡기 위해 노동조합을 찾았다. 그리고 그길로 스스로 지부 운영위원이 되었다. 육아 등의 문제에서 남성들은 민감성이 떨어지는 현실이라 그는 직접 토론하면서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는 조합원의 요구를 확인했고, 운영위원회와 노사협의회를 통해 육아, 출산 등과 관련한 각종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계속 교육했다. 법과 제도가 있는데도 방치됐던 것들이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아났다.

이후 2015년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공무원의 육아기단축근로수당이 민간의 절반 수준임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에 항의했다. 문제제기와 피드백을 거듭하다가 2017년 공무원에 지급되는 수당도 민간과 동일해지고서야 그는 쓴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사실 진현채가 계속 요구해 온 투쟁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굳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가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은 ‘후배들은 좀 나보다 편했으면’ 하는 단지 그 마음에서다. ‘목숨을 바쳐 싸워온 선배들의 피땀으로 나는 오늘도 편안하게 살고 있다’라며 마음 한편, 언제나 짊어지고 있던 부채감을 털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 지난 4월 진현채 처장이 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 지난 4월 진현채 처장이 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사실 진현채는 남원에서 ‘센’ 이미지로 오래 자리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대충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는 항상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하고 반문했다. 그러다 보니 옳은 말은 하지만, ‘좀 피곤한 스타일’로 인식된 거다. 진현채는 그래도 괜찮단다. 자신의 동지 몇이 굳게 믿어주며 함께하고 있으니 걱정도 별로 없다는 거다.

그러던 그가 이미지 변신에 일정 정도 성공한 것은 제주4.3역사기행을 겸해 떠난 지부 수련회. 전북본부 사무처장이 되고 첫 대중행사였다. 그는 조합원 앞에서 “모든 권리는 투쟁의 산물”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6월 28일 삭발식이 있던 그날처럼 차분하고도 당당한 어조로 조합원 앞에 선 강사 진현채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소질을 발견한 그는 앞으로도 ‘목소리’로 승부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할 생각이다.

▲ 진현채는 올해 3월 전북본부 사무처장 활동을 시작했다.
▲ 진현채는 올해 3월 전북본부 사무처장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행정의 주체, 정책생산의 주체로 공무원노동자가 나선 부산본부의 직접행정대회를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양승태를 퇴진시킨 법원본부의 투쟁 때도 그랬다. 공무원노조가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일을 찾아 변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여전히 공무원을 무시하는 대통령과도 맞장 뜰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몇몇 간부들만의 투쟁이 아닌 모두의 결의가 모여 질적으로 성장하는 공무원노조가 된다면 분명 가능하리라. 

진현채를 사회변혁의 주체로 이끈 것은 시대적인 분위기였지만, 어찌 보면 그를 다시 노동조합 안으로 이끈 것은 소중한 그의 보석들, 세 아이다. 아이를 양육하고 업무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온 고충이 그를 투쟁의 전선으로 이끌었고, 개인의 문제를 넘어 후 세대에 좋은 환경을 남기고자 그는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요구되는 일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지만, 양심을 걸 수 있다!”라며 당차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수년간의 열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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