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이 경찰국장이면 경찰 공무원은 뭐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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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위헌·위법 논란까지 무시한 채 31년 만에 경찰국을 전격 부활시켰다. 그리고 경찰국장 자리에 밀정(프락치) 출신을 임명했다. ‘이러려고 경찰국을 신설한 건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의 혹독한 고문과 음습한 공작을 떠올리게 하는 밀정 출신을 초대 경찰국장에 임명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윤 정부의 첫 경찰국장 김순호는 1989년 8월 ‘대공 특채’로 경찰에 들어간 인물이다. 김순호의 특채를 담당한 이는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 대공수사3과 홍승상 경감이다. 홍 전 경감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라는 거짓말을 날조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바로 그 인물이다. 

김순호 경찰국장은 성균관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1983년에 녹화공작 대상자로 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녹화공작이란 전두환 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운동권 학생을 강제 징집한 뒤 고문과 협박, 회유를 통해 출신 학교의 동향 수집 보고 활동 등을 강요한 일이다. 

▲ 김순호 경찰국장의 밀정 활동 관련 MBC 보도 캡쳐
▲ 김순호 경찰국장의 밀정 활동 관련 MBC 보도 캡쳐

김 국장의 밀정 활동은 MBC가 보안사 작성 문서를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드러났다. 보안사가 성균관대 학생 김순호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이라면서 작성한 문서에는 성균관대 학내 동아리 심산연구회의 조직도는 물론 합숙 MT 일정 등 매우 구체적인 학내 동향을 자세하게 보고한 것으로 적혀 있다. 심산연구회는 김 국장이 1983년 군 징집 전에 회장으로 활동했던 운동권 동아리다. 

김순호 경찰국장은 자신의 밀정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MBC의 보도에 대해 김 국장은 “전혀 모르는 얘기들투성이”라고 발뺌하면서 “존안자료의 유출 경위와 유출자에 대해 수사 의뢰하겠다.”라고 반응했다. ‘존안자료’는 보안사가 녹화사업 대상자들을 관리하며 작성한 개인 파일을 지칭한다. 2006년 7월 발표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강제징집·녹화사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녹화사업의 개인별 심사자료가 남아있다고 한다. 과거 보안사에서 작성한 김 국장에 관한 존안자료는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이다. 김 국장이 과거 밀정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본인의 존안자료를 복사‧열람해서 공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존안자료의 유출 경위와 유출자에 대해 수사 의뢰”라니, 뻔뻔스럽고 철면피다.

김순호의 밀정 활동은 군 전역 뒤에도 이어졌다. 1985년 7월에 전역한 김순호는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그해 9월 부천지역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해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1988년 2월 결성된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김봉진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부천 지구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그런데 이듬해 4월 초쯤 돌연 잠적했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동거인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종적을 감춘 시기를 전후해 김순호와 가까웠던 인노회 회원 15명이 경찰에 줄줄이 구속됐고 조직은 와해되었다. 

김순호는 사라진 지 넉 달 만에, 인노회가 와해된 지 두 달 만에 경찰로 특채되었다. 사건의 핵심 혐의자로 입건이 되기는커녕 순경보다 높은 직급인 경장으로 특채된 것이다. 경장으로 특채가 되려면 그에 상당하는 ‘특별한 공적’이 있었을 텐데, 그가 세운 공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989년 인노회 사건은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이 사건은 노태우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죄가 적용됐던 사건이다. 사건 관계자들은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고, 판사가 노동단체에 해당한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2020년 재심에서 인노회를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인노회 사건은 노태우 정부의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으로, 특히 밀정을 이용해 이적단체를 날조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김 국장을 경찰로 특채했던 홍승상 전 경감은 최근 TV조선과 익명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1989년 초 김순호가 자신을 찾아왔고, 인노회 사건 당시 수사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그 사건(인노회 사건)을 할 때 많이 (김순호) 도움을 받았어. 안보 정국을 전환시키는 데 내가 봐서는 크게 역할을 한 사람이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특채로 그렇게 받아준 거야.”라고 주장했다. 

김순호 경장은 4년 8개월 만에 경위 직급으로 승진했다. 당시 순경 공채자가 경위까지 승진하는 데 15~20년 정도 걸린 데 비하면 초고속 승진이었다. 1998년엔 경감까지 올랐다. 이 기간에 그는 범인 검거 유공 등으로 7차례 상훈을 받았는데, 수상 이유 가운데서 범인 검거 유공이 5차례나 되었다. 그가 경찰에서 맡았던 업무가 주로 대공 분야였으므로 범인 검거 유공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용공분자로 조작하는 데 공을 세웠다는 뜻일 터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 참사야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어떻게 감히 밀정 출신을 경찰국장으로 임명한단 말인가? 정권의 도덕적 저열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은 14만 경찰 공무원에게 밀고와 조작에 가담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인가?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전락한 것인지, 경찰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심정이 어떨지, 부끄럽고 참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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