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불황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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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현지시간) 미국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하였다. 빅스텝 금리 인상은 22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파월 연준 의장은 앞으로 남은 다섯 번 회의에서 두 차례 정도 0.5%포인트 추가 인상, 나머지 회의에서도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서둘러 인상하는 이유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10일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6% 올랐다고 발표했다. 4월(8.3%)보다 상승 폭이 커진 것은 물론 지난 3월(8.5%)을 넘어 1981년 12월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달 14~15일에 미국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예정돼 있다. 고물가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연준이 이번은 물론, 다음 달에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 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이렇게 올리면 연초 제로(0~0.25%)였던 기준금리가 연말쯤 2.5~2.75%로 올라가게 된다. 올 1년간 기준금리를 2.5%포인트 인상한다면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1980년대 말 이후 처음이다. 

▲ 최근 생활물가지수 상승률
▲ 최근 생활물가지수 상승률

물가가 치솟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대한 통화량이 풀렸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양적완화로 퍼부은 돈은 약 3조7천억 달러(약 4400조 원)였다. 2017년 이후 완만한 양적축소를 시작하던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 2년간 연준이 푼 돈은 약 4조8000억 달러(약 6000조 원)에 달한다. 미국을 필두로 하여 각국이 경쟁적으로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쏟아부은 천문학적 규모의 통화량이 이제 인플레이션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등이 벌어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커졌다.

원유와 밀 등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변동성에 더욱 취약한 구조이다.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5월 넷째 주(5월 22~26일) 평균가격은 배럴당 108.9달러를 기록했다. 5월 평균치와 비교하면 지난해 54.8달러에서 올해 108.2달러로 1년 새 97.4%나 뛰었다.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이 지난달 30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기로 한 데 이어 연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90%까지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지난 5월 말부터 리터당 2000원을 넘겼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포털 오피넷에 따르면 6월 2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리터당 2016.64원이다. 1년 전(1555.59원)과 비교해 약 30% 뛰었다. 경유는 같은 기간 1352.56원에서 2010.08원으로 무려 50% 가까이 올랐다. 지난 7일 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투쟁에 나선 배경이다. 6~8월은 휘발유와 경유 성수기여서 앞으로 더 오를 여지가 많다.

밀과 옥수수 등 국제곡물 가격 급등은 더 심각한 문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3월 밀의 선물가격(미 시카고상품거래소 기준)은 톤당 407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무려 73.9% 상승했다. 3월 국내 곡물수입단가는 평년(2015~2019) 대비 43.0~59.3%, 전년 동기 대비 21.2~47.2% 상승했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밀(0.5%)과 옥수수(0.7%) 등의 곡물자급률이 고작 3.2%에 불과하다. 수입곡물은 가공식품과 외식 등의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외식물가는 이미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김치찌개 가격(4월, 서울 기준)은 7154원으로, 1년 전(6769원)보다 5.7% 상승했다. 냉면 가격은 1년 새 9.5% 오른 평균 1만192원으로, 처음으로 1만 원을 넘어섰다. 자장면 가격은 14.1% 오르며 6000원을 넘었고, 칼국수 가격도 10.8% 상승하며 8000원을 돌파했다. 점심 먹으러 나가기 겁난다는 직장인들의 볼멘소리가 과장이 아니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5.4%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라고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6.7% 상승)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6% 수준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본다. 6%대 물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6.8%) 이후 경험한 적이 없다. “당분간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26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1.50→1.75%) 결정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발등의 불이 된 물가를 잡는 일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다. 

▲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추이
▲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추이

물가를 잡기 위해선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금리 인상이 금융부채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공식 집계로 지난해 말 기준 1862조1000억 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6.1%로, 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을 초과했다. 가계부채 비율과 증가속도 모두 세계 1위다.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으로 투자) 대출에 나선 차주와 자영업자, 다중채무자(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 등 취약계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시급한 과제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일이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어떤 정책을 내놔도 백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금리가 인상되면 경기 침체와 부채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커진다. 진퇴양난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불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잘 대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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