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공공성을 지켜야 할 무거운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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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살판이 난 모양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재계에서는 “이명박 이후 가장 시장친화적인 대통령이 나왔다”며 어깨춤을 들썩인단다. 이명박과 닮은 대통령이 나와서 좋다는 이야기인데, 무슨 멍멍이 소리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하고 자빠졌나?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끝나자마자 보수 경제지들을 중심으로 윤 당선자의 공약이었던 규제개혁 전담기구가 5월쯤 설치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각종 규제를 전담기구에 몰아넣은 뒤 그 기구의 진두지휘 아래 규제를 대거 없애버리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기구가 무슨 가제트 만능 팔이냐? 무슨 수로 수십 개 부처의 다양한 규제를 그 기구가 홀로 심사한다는 말인가? 그럴만한 전문성은 있고? 이 말은, 규제의 필요성 따위는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그냥 대놓고 재벌들이 원하는 만큼 규제를 난도질하겠다는 이야기다. 재벌들만 살판이 난 세상이 돼 버렸다.

 

규제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부터 규제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무슨 악마의 무기처럼 묘사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시장이라는 곳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들이 모인 장소다. 경제 주체들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자신을 위해 노력하면, 시장이 짠~ 하고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 시장주의자들의 철학 아닌가?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주장처럼 시장이 오로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합이라면, 공공의 영역은 누가 지키느냐는 질문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는 대놓고 규제 개혁을 외치며 재벌들의 민원 해소에 목숨을 걸었던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바로 이명박이다.

그런데 그 이명박이 2008년에 해양 운송사업을 활성화한답시고 선박연령(선령) 규제를 완화해 버린 일이 있었다. 당시 해운업계는 “선령 규제가 지나쳐 업계가 입는 손실이 매년 200억 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다.

이들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주신다면서요?”라며 물밀듯이 민원을 제기했고, 이명박은 바로 국토해양부에 개선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 결과 6개월 뒤 국토해양부는 시행규칙을 바꿔 20년이었던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늘렸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왜냐하면 이 규제 철폐 탓에 외국에서 수명을 다한 중고 선박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 중 한 척이 세월호였기 때문이다.

선령 규제가 완화되기 이전에는 15년 이상 노후 선박의 수입 비중은 29.4%에 불과했으나 규제를 철폐하자 노후 선박의 수입 비중이 63.2%로 폭증했다. 청해진해운이 2012년 수입한 세월호는 일본에서 퇴역하기 직전의 배였고 선령은 무려 18년이었다.

규제가 그대로 있었다면 수입해도 2년밖에 쓸 수 없는 이 배가 한국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선령 제한이 30년으로 늘어나면서 세월호는 한국에 버젓이 수입됐고,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를 낳았다.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윤 당선자가 후보 시절 최우선적으로 혁파해야 할 규제로 금융 관련 규제를 꼽은 적이 있었는데 이것도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당시 윤 후보 말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네거티브로 바뀌고 다양한 산업 수요를 금융이 자금 중개 기능을 통해 충족할 수 있도록 많이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대로 금융이 규제 없이 자유롭게(!) 자금 중개기능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이후 월가는 미국 정부에 압박을 가해 그들의 돈벌이에 방해가 되는 거의 모든 규제를 없앴다. 그리고는 민중들의 코 묻은 돈을 더 뜯어내겠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요상한 상품을 만들어 팔아 치웠다.

그 결과가 바로 2008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다. 적절한 대출 규제만 있었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았을 일인데,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미국 정부가 규제를 난도질하는 바람에 전 세계 민중들이 최악의 경제난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탐욕으로 가득 찬 시장이 존재하는 한, 그 탐욕에 맞서 공공을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 또한 시장의 탐욕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야 한다. 규제란 바로 그 공공을 지키는 정부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래서 정부는 절대 기업처럼 운영돼서는 안 된다. “투입자본 대비 효과가 어떻고”를 말하기 시작하면 공공의 영역이 무너진다. 안전이 붕괴되고 사람들이 죽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노동자를 절반으로 줄이고도 매출을 유지한 경영자는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을 해고하고도 기업 생산성을 유지하는 대통령이 나타난다면, 국민 절반을 실업자로 내 모는 꼴이 된다. 크루그먼이 “우리에게 CEO 타입의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단언한 이유다.

대표적인 CEO 타입(이라고 쓰고 ‘사기꾼 타입’이라고 읽는다) 대통령 이명박은 후보 시절부터 작은 정부를 공약하며 공무원 숫자부터 감축하겠다고 떠들어댔다. 전임 노무현 정부 시절 공무원 숫자가 무려 6만 명이나 늘었다면서, 그게 불필요한 낭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당시 늘었던 6만 명 공무원 중 대부분은 교사와 경찰관들이었다. 교사와 경찰관 증원이 세금 낭비인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과 치안이라는 가장 중요한 공적 영역을 지키는 매우 지당한 행위다.

슬프게도 향후 5년 동안 시장의 시대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윤석열 당선자 본인이 여러 차례 시장주의자임을 천명했으니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장주의자를 천명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시장이 이 사회의 모든 것을 삼키며 군림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윤석열의 당선으로 재벌들은 쾌재를 부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한국 사회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한국 사회의 공공성을 지켜야 할 무거운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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