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밀양 희망버스… 탈핵과 평화, 연대 한 자리에 모여

“우리 모두가 밀양이기에 다시 찾아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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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밀양이다

전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난달 30일 아침 밀양을 향해 갔다. ‘희망’이라는 이름을 단 50대의 버스로 또는 각자의 교통수단을 통해 수백km의 거리를 달려가 그곳에서 12월의 첫날을 맞았다.

밀양 주민들은 밀양 방문객들을 향해 곧잘 “와 주셔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일도 아닌 일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싸워 주는 것에 감동’ 받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밀양으로 출발한 희망버스의 탑승객들 중 어느 누구도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남의 일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희망버스 기획단이 ‘우리가 밀양’이라고 내세운 주제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밀양은 누군가에게 ‘그들’이나 ‘저들’일 뿐이다. 한전의 입장을 대변하는 거대자본에 종속된 언론은 밀양의 송전탑 건설 문제를 단순히 ‘보상’ 문제로 축소시켜 원자력을 둘러싼 에너지 자원, 환경, 인권, 지역 차별 등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의 축소판인 밀양이 바로 우리 자신이 당면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모른 척하게 만들어 ‘우리’의 문제를 ‘저들’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밀양에서 만난 사람들, 탈핵을 말하다

밀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환경과 에너지 등의 시민사회단체, 종교인들, 정치인들, 노동자들이 연대했다. 그런 단체에 속하지 않고 개인으로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의 이야기는 하나로 수렴됐다.

▲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가는 광명 볍씨학교 학생들. 이들을 인솔해온 한 학부모는 "탈핵 이론뿐 아니라 산 교육을 체험시키기 위해 밀양으로 간다"고 말했다.  사진 = 남현정 기자
▲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가는 광명 볍씨학교 학생들. 이들을 인솔해온 한 학부모는 "탈핵 이론뿐 아니라 산 교육을 체험시키기 위해 밀양으로 간다"고 말했다.  사진 = 남현정 기자

희망버스가 쉬었다간 칠곡 휴게소에서 광명 볍씨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과 함께 온 학부모는 지난 10월에 송전탑 공사가 재개됐을 때도 아이들과 함께 밀양을 방문해 농활을 펼쳤다고 한다. 학부모는 “아이들이 이론으로만 송전탑이나 탈핵 등에 대해서 배웠다. 밀양 현장을 직접 찾아가 아이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게 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 밀양을 찾아간다고 밝혔다.

희망버스가 내린 여수동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대학생 역시 “카톨릭 대학교에서 왔다. 오늘 30명 정도 참석했다”면서 “원전에너지 정책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탈핵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 122번 송전탑 주위 철책에 '송전탑 건설 반대'쪽지를 매단 대학생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함께 뭉치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기회라고.  사진 = 남현정 기자
▲ 122번 송전탑 주위 철책에 '송전탑 건설 반대'쪽지를 매단 대학생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함께 뭉치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기회라고.  사진 = 남현정 기자

 

상동면 옥산리에 위치한 122번, 123번 공사현장을 찾아가면서 만난 ‘엘리’라는 이름으로 마을에서 불린다는 강북 수유동의 주민은 마을 공동체에서 남편과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고 밝혔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환경 관련 원고를 접하다 그때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과 너무도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탈핵을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엘리는 “올 여름 공사가 중단됐을 때 무엇인가 해결책을 기대했지만 다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이제는 행동할 때라고 생각해 강북 수유동에서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모금 활동도 펼쳐서 지금까지 6차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앞으로 성금을 보냈다”고 밝혔다.

평화를 말하다

밀양 희망버스는 비폭력과 비타협의 원칙을 지켜냈다.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도착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공사 현장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김준한 신부는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일이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고 있는 밀양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그곳에 오르는 일을 마치 전사가 고지를 점령해 깃발을 꽂듯 밀양 어르신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 날 공사 현장을 찾은 밀양 주민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비폭력과 비타협으로 무장한 전사들이었다.

경찰은 밀양 버스를 막기 위해 밀양 상동면 여수 마을과 도곡 마을, 단장면 동화전 주변에 50개 중대 4천 여명을 배치했다. 그동안 수차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과 그들과 연대해온 시민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해 온 경찰이 이번에도 막대한 경찰력을 동원해 평화적으로 모인 사람들을 강제진압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실제 도곡 마을의 110번과 동화전 96번 송전탑 건설 현장으로 진입하려는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 밀양 상동면 옥수마을 122번 송전탑 건설 현장을 막고 있는 경찰과 한전측 인력. 전남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는 이 상황을 보고 "경찰도 한전 인부들도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에게도 즐겁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진 = 남현정 기자
▲ 밀양 상동면 옥수마을 122번 송전탑 건설 현장을 막고 있는 경찰과 한전측 인력. 전남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는 이 상황을 보고 "경찰도 한전 인부들도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에게도 즐겁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진 = 남현정 기자

초등학생 아들과 둘이서 전남 곡성에서 밀양을 찾아온 홍수진 씨는 122기 송전탑 공사 현장을 방문한 후 “경찰들이랑 대치하면서 저 사람들도 참 안됐고 철조망 뒤쪽에 있는 공사 인부들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쪽도 즐겁지 않은 일이다”면서 아들을 데리고 온 이유를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평화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 같은 여자나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대치하는 경찰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아이를 데려왔다”고 밝혔다.

보건복지정보개발원 봉혜영 분회장은 송전탑 건설 현장 방문 후 벌인 약식 집회에서 “방금 122번 송전탑 건설현장에 다녀왔다. 한전이 이곳에서 공사를 강행하는 모습이 탄압받는 노동자의 모습과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없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결정했으니 너희들은 무조건 따르라’ 이런 모습들이 노동자 탄압하는 것과 너무나 닮았다”고 말하며 한전의 폭력적인 일 처리 방식을 비난했다.

연대를 말하다

약식 집회에서 한 대학생은 “송전탑 마지막 1기만 막아내도 앞에 설치된 것들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한다. 끝까지 막아 내자. 우리 개개인의 힘은 미미할지 모르지만 뭉치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여기 오길 잘했다”며 “1박 2일 동안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 곳에 모인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 우리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송전탑 공사현장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 30일 저녁 7시 밀양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희망버스'참가자들의 촛불
▲ 30일 저녁 7시 밀양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희망버스'참가자들의 촛불

 

▲ '우리가 밀양이다' 문화제에서 "끝까지 함께 연대하자" 다짐하는 노동자들.  사진 = 남현정 기자
▲ '우리가 밀양이다' 문화제에서 "끝까지 함께 연대하자" 다짐하는 노동자들.  사진 = 남현정 기자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작가들, 또 개인들이 탄 희망버스 3호차의 차장 역할을 하고 온 에너지정의행동의 이영경 간사는 “계속 현장 분위기를 전달받아 긴장하면서 왔는데 아니나다를까 경찰이 대규모로 동원돼서 결국 122기와 123기에 오르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이미 4~5차례 ‘탈핵 희망버스’를 통해 밀양을 방문했던 이 간사는 “정말 마을 주민분들이 대단하다. 젊은 나도 현장에 올라갔다 오면 피곤하다. 조를 짜서 번갈아 오른다고는 하지만 연세도 있고 생업도 있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현장을 지키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다’라는 생각보다는 ‘힘을 더 얻어갈 때가 많다” 고 말했다. 마을 분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오히려 마을 어른들이 이곳을 지켜주셔서 고맙게 여긴다고 덧붙였다.

▲ 1일 오전 11시 희망버스 정리집회에서 만난 '밀양 할매'.  사진 = 남현정 기자
▲ 1일 오전 11시 희망버스 정리집회에서 만난 '밀양 할매'.  사진 = 남현정 기자

 

▲ '밀양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눈시울을 붉힌 밀양 주민.  사진 = 남현정 기자
▲ '밀양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눈시울을 붉힌 밀양 주민.  사진 = 남현정 기자

30일 저녁 7시 밀양역 앞에서 열린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도 한결같이 “함께 싸우자”고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백기완 소장과 쌍용차, 재능교육, 한국보건복지개발원의 노동자들, 용산 유가족, 강원도 홍천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밀양 주민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 희망버스 참가자 일동은 “밀양은 혼자가 아니고 우리 모두는 밀양이기 때문에 다시 밀양을 찾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기자회견문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 앞에서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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