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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활동 결심한 곳에서 공직생활 빛나게 마무리할 것!”[인터뷰] 이병하 조합원
오경희 기자  |  reporter_o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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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14  1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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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김경수 경남도지사로부터 임용장을 받고 공무원노조 경남본부 간부들과 경남도청 후배 공무원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복직한 후, 교육을 이수하고 사무관으로 승진, 7월 19일 자로 경상남도제승당관리사무소장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7년 만에 복직한 이병하 조합원 이야기다. 출근 12일 차인 지난 달 30일, 경남 통영의 섬, 한산도에서 마지막 공직생활을 하게 된 그를 직접 만나 소회를 들었다.

   
▲ 이병하 조합원

이병하는 1980년 진주시청 9급 공무원에 입직해 1988년 경남도청에 전입했다. 2002년 공무원노조가 출범할 당시 5급 사무관 승진을 눈앞에 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승진 1순위인 경남 본청 공무원은 아쉬울 것이 없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공직사회개혁과 부정부패척결을 내걸고 출범한 공무원노조에 그의 인생을 건 것은 그만큼 공무원노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평범한 삶보다는 뭔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

   
▲ 20년 전 노동조합을 결심한 제승당 가족여행 당시

이병하는 20년 전, 노동조합 간부로 나설 것에 대한 주위의 기대와 요구로 고민이 깊어지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 가족회의를 했다. 그런데 당시 인생의 중대한 결정한 내린 장소가 공교롭게 이번에 17년 만에 출근하게 된 한산도였다. 또한, 복직이 결정되고 나서 친구와 부부동반으로 기념여행을 온 곳도 한산도였다. 노동조합의 시작을 결심한 곳과 공직생활 마지막을 보내게 된 곳이 같다는 사실을 발령이 난 뒤, 딸의 제보(?)로 20년 전 묵은 사진을 찾아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병하와 한산도는 어쩌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 이병하는 2002년 연가파업을 앞두고 결의대회에서 삭발투쟁을 진행했다.

그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그는 1999년 김영길 전 위원장과 함께 경남도청 공무원직장협의회를 만들어 2001년 공무원노조 출범을 선언한 ‘6·9 전국공무원대회’를 이끌었으며, 공무원노조 경남도청지부장으로 활동하던 2002년, 공무원조합법 폐기를 요구하며 열린 ‘11‧4연가파업’에 참여했다가 구속, 해임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 행정절차를 거쳐 견책으로 감경되어 한 차례 복직됐지만, 2004년 경남본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단체협약 요구 농성과 공무원노조 총파업 주도 혐의로 또다시 구속, 결국 해임됐다. 그는 해고가 어떤 느낌인지 감조차 못 잡고 있을 때, 은행직원이 퇴직연금을 담보로 받았던 대출상환 계획을 묻는 자리에서 ‘해고’의 충격과 의미를 실감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겠다는 선언에 ‘왜 하필 너냐’, ‘적당히 좀’이란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병하는 확신이 있었다. 공무원노조는 시대의 흐름이었고, 공무원노동자의 기본권 쟁취에 대한 정당성 또한 확고했다. ‘나라도’ 나설 수 있어 다행이었고, 공무원노조의 역사를 세우는 데 한 걸음 앞서 있는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 경남진보연합 공동대표 활동 당시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병하 조합원

그는 해고된 후,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좌절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경남 진보연대 등 6개 시민사회단체에서 대표를 맡아 진보운동의 길을 개척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또한, 진보정당 운동에 뛰어들어 비록 후보단일화를 위해 중도 사퇴했지만, 2012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이병하, 그 인내의 여정>이라는 책을 출간하 기도 했다. 잘 나가던 도청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만나 해고자가 되어 사회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 싸우고 고난받는 민중과 연대한 17년의 세월 동안 이병하는 당당하고 진실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번 복직으로 인생에서 세 번째 공무원 임용장을 받았다. 17년 동안 한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켜준 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 동지들의 축하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아내가 직접 쓴 액자를 단체별로 하나씩 기증했고 감사의 떡을 돌렸다. 나이 60에 맞이한 복직이지만, 남은 6개월을 6년처럼 치열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눈이 소년처럼 빛난다. 

   
▲ 이병하는 지난 7월 19일 경상남도제승당관리사무소장으로 세 번째 공무원생황을 시작했다.

요즘 이병하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정독 중이다. 임진왜란 중 장군이 삼도수군을 통제했던 제승당의 관리소장을 맡고 보니 장군의 발자취를 제대로 이해하고, 멀리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이나 지인에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중한 역사를 공유해 줄 필요성을 더 많이 느껴서다. 인간 이순신과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이해하며, 얼마 남지 않은 공직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정년 이후에는 어떻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내올 참이다. 그는 1582년 1월 부당보고로 이순신 장군이 발포수군만호직에서 파직된 것을 두고, 장군과 자신이 같은 ‘공무원해고자’ 출신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내년 환갑을 맞이하는 이병하는 공직을 떠나면 오랜 시간 마음 졸이면서도 한결같이 곁을 내어준 아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을 꿈꾼다. 제승당에서 전략전술을 수립하여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 순신 장군처럼, 이병하 조합원도 공무원노동자로서의 삶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사회 대변혁을 위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할 것이다. 공무원노조 시작을 결심했던 이곳, 제승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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