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삼성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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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가 국정농단 뇌물공여죄 등으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을 했고,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즉시 허가했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13일 출소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허가는 명백한 특혜다. 
첫째,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의혹에 대한 형사재판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은 이 재판에서 지배권 승계를 위한 허위사실 유포, 주주매수, 고객 개인정보의 유용, 시세조종 혐의 등 자신의 혐의에 대해 전부 부인하고 있다. 개전의 정이 전혀 없는데도 가석방된 전례가 있는가? 삼성이 아니라면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특혜다. 

둘째, 법무부는 통상 실무적으로 형기의 80% 이상을 채운 수형자에게 가석방을 허가해왔다. 그런데, 지난 4월 말 가석방 심사기준을 형 집행률의 60% 수준으로 완화하고, 그 시행을 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이 부회장은 7월 28일로 형기의 60%를 채워 가석방 심사기준 변 경의 혜택을 가장 먼저 적용받았다. ‘이재용 맞춤형’ 가석방 심사기준 완화라고 욕먹어도 변 명의 여지가 없다. 이런 특혜가 또 있을까? 

셋째,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횡령으로 손해를 입힌 삼성전자에 5년간 취업할 수 없다.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1항) 하지만 이 부회장은 여전히 삼성전자에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같은 법 제14조 제6항에 따르면 취업제한 조치를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런데도 이 부회장을 가석방으로 풀어주다니! 명백한 특혜다. 

▲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4항은 “법무부장관은 위반한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이 취업하고 있는 기관이나 기업체의 장 또는 허가 등을 한 행정기관의 장에게 그의 해임이나 허가 등의 취소를 요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박 장관은 삼성전자 측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지금껏 눈감아줬다. 이 부 회장의 해임을 요구하기는커녕 그의 가석방을 승인함으로써 법치주의를 짓밟았다. 

박 장관은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벌 총수에게 특혜를 줬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대체 국가적 경제상황이 이 부회장의 범죄와 무슨 상관이 있나? 경제범을 풀어주는 것이 글로벌 경제 환경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더구나 이 부회장은 가석방되더라도 경영에 복귀할 수 없다. 가석방으로 풀려나도 삼성전자에 취업이 제한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재용의 사기업도 아니다. 

다만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취업하는 것도 가능하다. 취업제한 및 인가·허가 금지의 예외 규정 때문이다. 그간 보여준 박 장관의 행태에 비춰보면 승인하고도 남을 것 같다. 박 장관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이 부회장 취업제한 위반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눈감아 줬으며, 법치주의를 무시한 채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승인한 장본인이다. 그러니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안 봐도 빤하다.

그런데 청와대의 태도가 가관이다. 알다시피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가석방은 법무부 소관이다. 형식적으로 가석방은 가석방심사위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무부 장관의 허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는 시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정치 사안인데, 그 결정이 대통 령의 의중과 관계없이 법무부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소관”이라며 선을 긋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일까? 문 대통령은 2015년 1월 “재벌 대기업의 총수나 임원들은 국가경제에 기여해온 공로나 차지하고 있는 비중 때문에 법원에서 형량을 정할 때부터 엄청난 고려를 받고 있고, 국민들이 볼 때는 특혜를 받고 있다”면서 “이미 형량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데 가석방 특혜까지 받는다면 그것은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은 문 대통령의 자기 부정인 셈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후보 캠프는 9일 입장문에서 “재벌이라는 이유로 특혜나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재명 후보의 평소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재명 후보는 “(이 부회장이) 특별한 존재라고 해서 법 앞에 특별한 혜택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재벌이라고 해서 가석방이라든지 이런 제도에서 불이익을 줄 필요도 없다”고 했다. 

놀라운 건 이재명 후보의 입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인 가석방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기업인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또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답했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세습된 삼성재벌의 총수가 과연 어떤 불이익을 받았고 무슨 역차별을 당했단 말인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에서 우리는 새삼 뼈저리게 절감한다. 
헌법 제11조는 죽었다. 
(헌법 제11조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삼성은 특수계급이다. 삼성은 법 위에 군림하는 치외법권의 성역이며,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삼성 앞에서 무력하게 꼬꾸라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삼성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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