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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대회, 역사의 주역으로부터 듣는 그날의 이야기[인터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김영길 2기 위원장
오경희 기자  |  reporter_o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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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16  1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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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노조 김영길 2기 위원장

2001년 6월 9일, 당시를 회고하면 
7천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를 총괄 기획하고 집행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정신없이 대회를 치렀고, 거리행진과 마무리 집회까지 마쳐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게 생각난다. 
딱 한 가지 생생한 기억을 공유하자면, 당일 대열 맨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하다가 창원시청 로터리에서 행진 대오가 잠시 멈춘 틈에 뒤를 돌아봤는데, 내 생에 가장 ‘기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대회장이던 용지공원에서 아직도 끝없이 빠져나오고 있는 행렬을 보면서 ‘장관이다, 대단하다, 성공적이다…’ 등등의 생각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2001년 6월 9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전국공무원결의대회,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공무원노조에서 6·9대회가 갖는 의미 
한마디로 6·9대회는 공무원노조의 출발 신호탄을 쏘아 올린 역사적 대회였다. 당시 전공련(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 공무원노조의 전신) 위원장인 故 차봉천 위원장이 대회사에서 “금년 중에 정부에서 공무원들에게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 중에 공무원노조를 출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6·9대회는 현직 공무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위해 모인 전국 규모의 첫 장외집회였고, ‘공무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대회였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대회 소식을 접한 조합원들에게도 순기능으로 작용해 공무원노조 건설로 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당시 경남에서 6·9대회를 개최하게 된 배경은 
2000년 9월 결성된 경공련(경남공 무원직장협의회연합)은 첫 사업으로 전교조(경남지부)와 공동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악저지 경남공무원교사대회’를 2000년 11월 진주에서 성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 힘으로 경공련 2001년 사업계획에 ‘전국규모의 집회를 경공련 주도로 상반기 중에 경남권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경공련의 내부 결의를 거쳐 2001년 4월 한신대학교에서 열린 전공련 중앙위원회에 제안하여 대회가 결정되었다. 
경공련에서 제안한 대회 개요는 ▴공무원도 노동자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5천 명 규모 이상의 전국 집회를 경남에서 5월 중에 개최 ▴집회 인원은 경남에서 3천 명, 경남 이외의 전국 각지에서 1천 명, 전교조 5백 명, 민주노총을 비롯한 연대단체 5백 명으로 한다. ▴지역별 개별경비 이외에 집회에 소요되는 일체의 경비는 경공련에서 부담한다 등이었다. 하지만 사실 전국 규모의 첫 장외집회라 내부에서도 가능할지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컸다. 따라서 당일 대회의 성사를 반신반의하고 소극적이었던 공무원들의 마음에 희망의 불을 지핀 계기가 됐다. 

당시 민주노총 등을 비롯한 노동시민 사회단체와의 연대는 
전공련은 노동조합 전환을 염두에 둔 단체였기에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진보진영에서 과분할 정도의 애정을 쏟아주었다. 공무원·교사 공동대책위원회(약칭 공대위, 당시 부산공대위 공동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가 전국단위는 물론 각 광역단위로 결성되어, 연대를 넘어서서 지지, 엄호했기에 오늘날의 공무원노조가 올곧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대회 며칠 후에 나를 비롯한 관련자 4명에 대해 수배령이 떨어져 명동성당 등에 거점을 마련하고 농성에 돌입했는데, 이때도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공대위 동지들이 연대 수준을 넘어 자신의 문제처럼 함께 싸워줬다. 

   
▲ 김영길 2기 위원장이 2004년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2기 위원장을 맡아 여러 투쟁을 했다. 
처음 공무원노조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1기는 ‛공무원노조’라는 집을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 단계, 2기는 1기가 닦아놓은 터에 기초를 놓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은 다음 기수의 과제였기에, 그 터에 어떤 건물을 올리더라도 전혀 흔들림 없는 튼실한 기초를 놓아야 했다. 2기 위원장을 맡아 공무원노조의 ‘3총사업’을 해냈다. 총선투쟁 (민주노동당 지지선언), 총파업, 민주노총 가입이 그것이다. 법을 뛰어넘어 공무원노동자들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했기에, 공무원노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스무 살 공무원노조와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갈 14만 조합원에게 
공무원노조가 정부의 모진 탄압과 내부의 갈등으로 어려운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한길을 강건하게 달려온 지난 20년이 자랑스럽다. 오래된 정치혐오와 ‘빨갱이 낙인찍기’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청춘을 바쳐 온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자본과 권력에 맞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절대 개별화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20년 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차이로 분열하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초기 공무원노조 건설 단계에서 활동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이란 직업을 가진 모든 노동자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는 것을 진심으로 보고 싶다. 공무원노조가 맏형으로서 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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