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생각만으로도 이미 긴장상태다. 3개월 주기로 다가오는 당직 근무 탓이다. 1년 전쯤이었을까. 불법 주차신고 민원인 한명이 5분 간격으로 전화해서 나를 찾았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욱’하는 마음 눌러 담고 또 담으며, 죄송할 것이 없는데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상황을 종료시키려 했던 그 노력들…. 그랬던 이유로 당직 근무에 대한 부담감은 배로 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당직이라기 보단 민원인 응대에 대한 부담이다.
주차민원은 물론 건축, 복지지원 부서 등 특히 고질적 민원이 많은 부서가 있다. 불현듯 그날 같이 근무했던 발령 2년차 주무관의 내공이 생각났다. 내가 경험한 악성민원보다 더 강도가 센 민원들도 ‘담담하게 넘긴다’고 위로했던 그녀. 나 또한 “배울 게 많다”는 농담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올해 3월, 강동구 공무원 시신이 한강에서 발견됐다. 투신한 지 두 달만이라고 한다. 떠올려보면 올해 겨울, 유난히도 추웠다. 그 공무원에게는 차디찬 강물보다도 악성민원인의 말말과 폭언이 더 차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늘만 무사히’ ‘나만 아니면 돼’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당직을 맞이했던 나 자신부터 반성한다.
“악성민원 발생 건수가 한 해에 4만여 건에 달할 만큼 수많은 공무원노동자가 악성민원의 늪에 빠져있다. 악성민원인에게 목숨을 잃거나 폭행당한 공무원, 악성민원에 의한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도 있다. 공무원노동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악성민원은 공무원노조가 앞장 서 해결해야 할 절대과제다.”
공무원U신문에서 연재 중인 민원문화 개선 기획 시리즈 두 번째 글 ‘악성민원 예방, 공무원 노조가 나서 안전한 일터로 바꾼다’의 도입부분을 발췌했다. 격하게 공감한다. 비단 강동구 공무원뿐이겠는가. 이 문제만큼은 여론도 공무원 편이다. 아니,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약자들의 편이다. 그 당시 포털 메인에 올라온 기사에 ‘친절해야 한다는 게 요즘엔 또 다른 폭력이 아닌가 싶다’는 댓글이 달렸고, 이 글에 가장 많은 이들이 반응했다.
민선시대, 대민행정의 최일선에 있는 공무원의 친절이 지방정부 경쟁력으로 작용하면서 ‘민원인을 화나게 하면 안된다’는 인식이 당연한 듯 자리 잡았다. 친절한 행정은 동의하지만, 그 친절은 쌍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무례한 이들에게까지 친절을 강요하는 것, 정말 또 다른 폭력이다.
악성민원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들에게 목걸이형 카메라를 지급하거나 청원경찰을 상주시키는 등 지방정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보호대책을 강화하고 나섰다. 역부족이다. 생명까지 앗아간 악성민원을 한 사람, 한 기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지난 3월5일 전국공무원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공직사회 악성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민원현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사태는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악성민원도 범죄라는 인식, 이 당연한 명제가 모든 이들에게 각인돼야 한다. 어떤 범죄든 가해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악성민원에 대처하는 조직의 힘도 중요하다. 공무원노조가 악성민원에 지친 공무원들의 든든한 ‘빽’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