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최대피해자 청년공무원, 민원인 폭언·폭행에 무방비 노출

공직사회 악성민원 해결..."정부와 기관이 제대로 응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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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은 악성민원이 발생하는 자치단체 민원실
▲ 가장 많은 악성민원이 발생하는 자치단체 민원실

지난 1월 초 강동구청에서 주·정차 단속 관련 민원 업무를 담당하던 30대 공무원이 한강에 투신했다. 공무원에 임용된 지 1년 남짓 된 그는 평소 가족에게 민원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 해왔다.

공무원이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입는 일은 매년 반복되고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경북 봉화군 면사무소에서 민원인이 총기를 난사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원처리에 불만을 가진 주민이 민원실에서 칼과 낫을 휘두르는 일도 있었다.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민원 담당 공무원 중에 민원인에게 폭언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더군다나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해가 공무원 입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공무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청년위원회(위원장 최승혁)가 지난 2019년에 발표한 청년조합원 인식 및 요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현안 과제로 악성민원 해결을 꼽았고, 직장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도 악성민원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청년공무원이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많이 맡고 있다. 앞으로 공직사회와 공무원노조를 이끌어갈 청년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으로 인해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입직한지 5년 미만인 공무원 퇴직자의 수는 약 2만9천여 명으로 전체 퇴직 공무원의 15%에 달한다. 해마다 약 6천여 명의 젊은 공무원이 공직사회를 떠나고 있다. 악성 민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젊은 공무원들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공무원노조는 그동안 공직사회 악성 민원 근절을 위해 현장의 사례를 접수하여 대국민 홍보 영상과 선전물 제작, 악성민원 대응 매뉴얼 책자 배포, 기자회견, 정부 교섭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악성민원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다. 본부와 지부에서도 악성 민원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악성 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관의 책임 있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공무원노조에서 수집한 악성민원 사례 모음집에서 발췌
▲ 공무원노조에서 수집한 악성민원 사례 모음집에서 발췌

정부와 지자체도 악성 민원의 심각성을 느끼고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공부문 특별(악성, 고질)민원 대응 매뉴얼’을 발간했고, 행정안전부는 매년 '민원행정 제도개선 기본지침'을 발간해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고 실효성도 높지 않아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악성 민원의 대부분은 공무원이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을 직접 상대했을 때 발생한다. 일부 기관에서 이를 예방코자 동주민센터나 구청 민원대에 보호막을 설치하는 등 초보적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무원을 괴롭히는 악성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민원인이 민원대 안으로 들어와서 공무원을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민원인의 폭력을 막을 수 있는 좀 더 강력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공무원노조 최승혁 청년위원장은 “정부와 기관의 민원응대 매뉴얼을 보면 대부분 공무원의 응대 요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애초에 악성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제도적으로 미흡하다”면서 “민원실 CCTV, 비상벨, 전화 자동녹음, 청원경찰 배치 등 기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조차도 대다수의 기관이 소극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 위원장은 “공무원을 상대로 폭언과 폭행이 발생해도 기관 관리자들이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피해를 본 공무원이 민원인을 신고하거나 고소·고발하고 싶어도 절차가 복잡하고, 이러한 행동이 또다시 보복 민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을 위한 기본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민원인에게 공무원을 상대로 한 폭언·폭행 행위에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인식을 갖도록 제도와 절차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폭행을 가할 경우 형법 제260조에 의한 폭행죄로 처벌받아 2년 이하 징역, 5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화가 난 민원인에게 법에 위반되어 처벌될 수 있다고 안내하면 오히려 화를 돋우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공무원이 직접 악성 민원에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을 보호하면서도 악성 민원에 대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구청과 동주민센터 등에 청원경찰, 방호원 등 안전요원이 필요한 이유다.

악성 민원은 공직사회의 사기와 근무의욕을 저하시키는 가장 암적인 존재다. 따라서 정부와 기관은 더는 말만 앞세우고 실효성 없는 매뉴얼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처벌을 강화하고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근절 가능한 예방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출근하는 게 두렵다”는 청년공무원의 호소에 이제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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