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인공수초섬 사고, 공무원 희생양 삼는 관행 사라져야

공무원노동자 적극행정...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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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노조 전호일 위원장이 춘천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공무원노조 전호일 위원장이 춘천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춘천지방검찰청 앞에서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강원본부 춘천시지부 조합원들의 1인 시위 행렬이 52일째 이어지고 있다. 
강원본부 소속 타 지부에서도 주 2회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춘천시의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는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노동자들은 태풍, 가뭄, 수해, 폭설, 산불 등의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AI조류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에 이어 작년부터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감염병에 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인한 스트레스는 차치하고라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고스란히 그 책임은 현장 공무원에게 돌아오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공무원노동자들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긴 장마가 지속되던 지난해 8월 6일, 강원도 춘천 의암호에 설치된 인공수초섬이 유실돼 이에 대응하던 선박 3척이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경찰과 현장에 있던 노동자, 출산휴가 중 급하게 현장으로 나갔던 춘천시 공무원 등 6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불어난 의암호의 빠른 유속에 의해 떠내려가는 인공수초섬을 고박(苦縛)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문제의 핵심은 당일 ‘고박 지시를 누가 했는가’였다. 경찰은 합동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조사를 했지만 고박 지시를 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서 ‘인재’로 규정하고 춘천시의 책임규명을 요구하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경찰은 담당업무 결재 라인 등에 있는 6명의 춘천시 공무원을 무리하게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심지어 현장에서 물에 빠진 노동자를 구해 준 주무관도 포함됐다. 현장에서 살아남아 매일 트라우마를 겪는 조합원이 순식간에 피의자가 된 것. 이유는 ‘적극적으로 사전조치 및 작업을 말리지 않았다’ 는 것이다. 

춘천시와 춘천시지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장례와 유족에 대한 보상 절차, 위로금 모금 등 유족 지원에 집중하는 한편, 처음으로 인사사고를 겪은 조합원들의 상처를 위로하면서 100일 가까이 보냈다. 

▲ 오늘도 춘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춘천시지부 조합원들의 1인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 오늘도 춘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춘천시지부 조합원들의 1인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11월 20일, 6명의 공무원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춘천시지부의 투쟁이 시작됐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로 정리된 끼워 맞추기식 수사결과에 동의할 수 없었으며, 이번 사고로 누구보다 큰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호소하는 공무원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조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11월 24일, 춘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시작된 1인 시위는 지부 임원을 거쳐 일반 조합원들로 이어졌고,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 춘천시지부 이재경 지부장이 공무원U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춘천시지부 이재경 지부장이 공무원U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춘천시지부 이재경 지부장은 “사고가 났을 때 모든 책임이 공무원에게 전가되는 것에 심각한 문제를 느꼈다. 공무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지부장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공무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공무원노조와 지역사회 연대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단순히 춘천시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 공무원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인 만큼 공무원노조 전체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공무원노조 강원본부 이영복 본부장은 “전국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는 재난에 따른 안전 매뉴얼만 제대로 있어도 성실히 일하는 공무원이 피의자로 내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정해진 소수의 인원으로 일하다 보니 많은 현장을 직접 나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허가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경비 절감의 이유로 인력은 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요구만 늘고 있는데, 실질적인 인력보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행정에 따른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 업무를 하면서 생기는 사건사고에 담당 공무원의 무한책임만을 요구한다면, 누가 소신을 가지고 적극 행정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장 업무를 하는 공무원에게는 그 현장을 안전하게 관리할 책임도 있지만, 노동자로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또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이기에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하며, 무엇보다 공무원노조를 중심으로 현장공무원의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반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무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경찰을 규탄하고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춘천시지부의 1인 시위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나만 아니면 된다’가 아니라 ‘언젠가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는 동지적 결심과 행동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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